제7장 유아기와 어린이 시절의 당신 아이를 축복하기
Blessing Your Child in Infancy and Early Childhood
Another key time at which blessing or cursing can occur is during infancy and early childhood. A child is very vulnerable at this stage because he cannot meet any of his own needs. If he doesn’t feel secure that his needs will be met, the child may begin to trust no one but himself. Of course, this is not a moment in time but a season of life during which the child is lookiing for consistent nurture and care. It is this consistency that allows a child to learn to trust others.
축복과 저주가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주요한 때는 유아기와 아동 시기이다. 아이는 이 단계에서 아주 상처입기 쉬운데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필요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 아이가 자기의 필요들이 충당될 것이라고 느끼지 않으면 그 아이는 자신 외에 아무도 신뢰하지 않기를 시작할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시간상 한순간이 아니라 그 아이가 끊임없는 양육과 돌봄을 찾는 기간인 삶의 한 시기이지만. 아이가 타인들을 신뢰하기를 배우게 허락하는 것은 이 일관성(역자 첨부: 양육과 돌봄이 끊기지 않는 일관성) 이다.
주(主) 역할자(役割者)
Key Role Player
The key role player in blessing a child in infancy and early childhood is the mother. While the affection of the father is important, it is really the mother’s care that is critical to establishing basic trust during this key time of life. She is the one who can answer the key question in the child’s heart with the divine truth that will bring peace to her child’s soul.
유아기와 초기 아동 시기에 자식을 축복하는데 있어서 주 역할자는 엄마이다. 아비의 애정이 중요한 반면에 인생의 이 중요한 시기 동안에 기본적인 신뢰를 구축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참으로 엄마의 돌봄이다. 엄마는 그 아이의 영혼에 평화를 가져올 신적인 진리로 아이의 가슴 속에 주요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답이 나와야 할 핵심 질문
Key Question To Be Answered
In early childhood the key questions to be answered are: Is there anyone I can really trust to meet my needs? Is there anyone here bigger, stronger, and wiser than I am, who truly loves and cares about me?
어린아이 시절에 답을 들어야 할 핵심 질문들은, 내 필요를 채워줄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있는가? 나보다 더 크고 강하고 지혜로운 누구, 참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염려해줄 누군가가 있는가?
An infant must trust people outside himself to survive. As a result, the enemy wants to make sure the child receives no consistent care, thus creating a significant fear of death, inner turmoil, and a struggle to survive. The enemy wants the child to think, “If there is nobody I can count on to meet my needs, then I’ll have to meet all my own needs.” If this is not possible for the infant or toddler to accomplish, and it likely will not be, he will experience much fear, and his soul will not be at rest.
유아는 생존하기 위하여 자기 밖의 사람을 신뢰해야만 한다. 그 결과 원수 마귀는 아이가 아무 지속적인 돌봄을 받지 못한다고 확신시키려 하고 그래서 중대한 죽음의 공포, 내면의 동요, 그리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낸다. 원수 마귀는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내 필요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내 자신의 필요들을 채워야만 할 것이다.” 만일 이것이 유아나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성취하기에 가능하지 않다면 아이는 많은 공포를 경험할 것이고 그의 영혼이 안정하지 못할 것이다.
유아기와 어린아이 시절에 축복과 저주
Blessing and Cursing In Infancy and Early Childhood
Of course it was God’s plan for children to receive a powerful message of blessing through their parents in infancy and throughout early childhood. Below are some of the ways parents can either bless or curse their children in this phase of development.
물론 어린아이들이 유아기와 초기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들의 부모로부터 힘있는 축복의 메시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아래에 부모들이 이 발전의 국면에서 자기 자녀들을 축복하거나 저주할 수 있는 몇 가지의 방법들이 있다.
Blessing at the time of infancy may include:
유아기에 축복하는 것은 아래의 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1. The parents communicating verbally and physically that the child is wanted, accepted, received, and welcome, with
the mother in particular loving, holding, and physically nurturing the baby.
2. The mother breast-feeding the infant to help create a physical and emotional bond.
3. The mother giving consistent care and meeting the child’s physical and emotional needs, thus encouraging him to trust
someone outside himself to meet the needs.
4. The father expressing significant amounts of physical touch and affection
1. 아이가 자기는 부모가 원하는 바이고, 용납되고, 받아들여지고, 환 경받는다고 말로 행동으로 부모들이 소통하는 것 (특 별히 아기를 사 랑하고 붙잡고 육체적으로 돌보는 엄마와 함께 소통함).
2. 육체적, 정서적 유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엄마가 유아에게 모 유를 먹이는 것.
3. 엄마가 지속적인 돌봄을 하고 아이의 육체적, 정서적 필요들을 채 워주는 것, 그래서 아이를 격려하여 그가 필요들을 채 자신 밖의 어떤 사람을 신뢰하는 것.
4. 상당한 분량의 육체적 접촉과 애정을 표현하는 아버지.
Cursing at the time of infancy may include:
유아기에 저주하는 것은 아래 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1. The parents communicating verbally and physically that the child is not wanted and not welcome, and the mother
withholding love, affection, or physical nurture.
2. The mother not creating a physical or emotional bond through breast-feeding or other forms of meaningful touch and
nurturing.
3. The child receiving inconsistent care because Mom is not steadily available to meet his physical and emotional needs
and therefore outsources this responsibility to an array of caregivers (relatives, day-care workers, nannies, etc.)
4. The father not showing appropriate physical touch and affection.
1. 아이가 부모의 원한 바가 아니고 환영받지 않는다고 말로 행동으로 전하는 부모, 사랑과 애정과 육체적 돌봄을 억제하
는 엄마.
2. 모유를 먹이거나 다른 형태의 의미있는 접촉과 돌봄을 통해서 육체 적, 정서적 유대를 만들지 않는 엄마.
3. 엄마가 꾸준하게 그 아이의 육체적, 정서적 필요들을 채우는데 유 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임을 일련의 아기 돌보미들
에게서 (친척 들, 일용 일군들, 가정부 등등) 조달하기 때문에 아이가 일관성 없는 돌봄를 받는 것.
4. 아비가 적합한 육체적 접촉과 애정을 보이지 않는 것.
어린이 초기의 축복과 저주의 가능한 결과들
Potential Consequences of Blessing and Cursing In Early Childhood
Children need lots of physical touch and affection from their parents. Cuddling and other forms of physical touch create healthy bonding and impart a sense of security, which is part of the blessing God intended. Research scientist James Prescott, phD, who has studied the effects of early childhood sensory deprivation, says, “If you don’t bond with anyone as a child, you’re not going to bond with anyone as an adult.” 1 footnote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많은 육체적 접촉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 꼭 껴안아 줌과 다른 형태의 육체적 접촉은 건강한 결속과 안정감을 주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축복의 한 부분이다. 리서치 과학자 제임스 프리스콧 박사는 (Reasrch scientist James Prescott) 이른 나이의 아이의 감각 상실의 결과들을 연구한 분인데 이렇게 말한다. “만일 당신이 아이로서 누구와 유대를 갖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른으로서 누구와도 유대를 갖지 못할 것이다.” 1
Footnote
1 Kim Knight, “The Consequences of Sensory Deprivation in Early Childhood,” The Art of Health, July 14, 2010,
http://kimknight 101. wordpress.com/2010/07/14/the-consequences-
of-sensory-deprivation-in-early-childhood/(accessed Dec.1o, 2012).
Women’s bodies have the natural capacity to nourish their babies. This is part of God’s design to bless children. Breast-feeding ensures an infant receives lots of physical touch and nurturing. The baby naturally bonds with his mother as he is held and cuddled several times per day. In ancient Hebrew culture (and in most past culture) it was typical for a mother to breast-feed her children. In our modern Western culture many people prefer to bottle-feed their babies. One common reason is that many mothers works outside the home and are not available to breast-feed several times a day.
여성들의 몸은 그들의 아기들을 먹이는 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아이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설계의 한 부분이다. 모유를 먹임은 유아가 많은 육체적 접촉과 돌봄을 확실히 받게 한다. 아기는 붙잡힘을 받고 하루에 여러 번 안길 때 자연적으로 자기 엄마와 결속된다. 고대 히브리 문화에서 (그리고 가장 과거 문화에서) 엄마가 자기의 자식들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은 전형적이었다. 우리의 현대 서구문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아기들을 젖병으로 먹이기를 선호한다. 하나의 공통적인 이유는 많은 엄마들이 집 밖에서 일하고 하루에 여러 번 모유를 먹이는 게 유용치 않기 때문이다.
Through my years of ministry I have found that many people who did not receive blessing through a mother’s touch during infancy develop a deep inner craving for physical touch and tactile stimulation later in life. This need for physical touch and affection is sometimes sexualized. I have encountered many men who look to satisfy this inner need for touch through physical intimacy with their wives. However, this is not what marital intimacy was created to do.
내 사역의 여러 해들을 통해 나는 발견했다. 유아기 동안 엄마의 만져줌을 통해 축복을 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생의 후기에 육체적 접촉과 촉각에 의한 자극을 내면의 갈망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이 육체적 접촉과 애정의 필요는 종종 성적 특성을 지닌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자기 아내와 육체적 친밀을 통해서 접촉의 내적인 필요를 만족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이것은 결혼의 친밀감이 그렇게 하도록 창조된 바가 아니다.
Many times when I’ve counseled couples, the wives have told me privately that they feel overwhelmed by their husbands’ needs. “Pastor,” they say, “I enjoy sexual intimacy as much as anyone, but my husband’s need is excessive. I am becoming exhausted.” As I have prayed with the husbands to discover the root issue, the Lord has exposed that there is a deep need for nurture in the heart of a little boy who was never cuddled as an infant
여러 번 부부들을 상담했을 때 아내들은 은밀히 말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남편의 필요들에 의해서 압도되는 느낌을 갖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목사님, 저는 어떤 누구만큼 많이 성적 친밀감을 즐겨요. 그러나 제 남편의 필요는 과도해요. 나는 기진해가고 있어요.” 내가 그 근본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서 남편들과 함께 기도했을 때 주님은 유아기에 포옹을 받지 못한 작은 소년의 마음 안에 돌봄을 위한 깊은 필요가 있다고 드러내주셨다.
Young children who have not experienced physical love and cuddling from their parents will frequently develop doubt that their needs will be met. When this happens, the enemy often attempts to impart a fear of death in the infant, who has no ability to care for himself. If there is not consistent cuddling and nurturing from Mom, the child may from an early age begin to trust in himself to meet his own needs, fearing he will die otherwise. The child does not usually do this consciously. He simply begins to conclude, “No one is here to meet my needs, so I had better take care of myself. Since no one is here for me, I won’t trust anyone outside myself to provide for me.”
그들의 부모로부터 육체적인 사랑과 포옹을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아이들은 자주 그들의 필요들이 채워질까 하는 의심을 발전시킬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원수 마귀는 자주 유아 속에 죽음의 공포를 전달하는 시도를 하는데 이런 유아들은 자신을 돌볼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다. 엄마로부터 한결같은 포옹과 보살핌이 없다면 그 아이는 어린 나이때부터 자신의 필요들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죽을까 두려워한다. 아이는 보통 이것을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결론을 내리기 시작한다. “아무도 내 필요들을 채워주기 위해 여기에 없어. 아무도 나를 위해 여기 있지 않으니까 나는 나를 위해 공급하기 위하여 나 자신 외에 누구도 신뢰하지 않을 거야.”
When this fear and insecurity are established deep inside a child, they do not lessen as he grows and enters adulthood. They simply produce a teenager or adult with an inability to trust his friends, spouse, or even God. As an adult, this person may give his life to Christ and say, “Lord, I trust you with my whole life.” Yet when crisis awakens the deep fear inside, this person will immediately take his life out of God’s hands and act on his own behalf.
이 공포와 불안감이 아이의 마음 깊이 세워질 때 그들은 자라고 성인이 되어갈 때에 그것들이 감소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자기의 친구들이나 배우자나 하나님까지도 신뢰할 능력이 없는 십대 (teenager) 혹은 성인(成人)을 생산할 뿐이다. 성인으로서 이 사람은 그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치고 말할지 모른다. “주님, 저는 제 온 생명으로 당신을 신뢰합니다.” 그럼에도 위기가 내부의 그 깊은 공포를 깨울 때 이 사람은 즉각 자기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서 끄집어내고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we have prayed for several people who have had a deep inability to trust a spouse or God. When we asked the Holy Spirit when this insecurity started, we quickly learn that it started in infancy due to a lack of nurturing. The first time I encountered this in a married man, I wasn’t sure how to help him. So we prayed and asked God how to meet his deep need for nutrute since he could not now receive it from his mother. The Lord instructed me to tell this man that God was the only one who could meet his need.
우리는 배우자나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깊은 무능력을 가지고 사는 몇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왔다. 우리가 성령님께 언제 불안정이 시작했는지 여쭈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돌봄의 결여 때문에 유아 안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즉각 배웠다. 내가 결혼한 남자 안에서 이런 것을 만난 그 첫 번 째 경우에 나는 그를 어떻게 도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돌봄을 위한 그의 깊은 필요를 채울까를 하나님께 여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그의 어머니로부터 그것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내게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말해주라고 지시하셨다.
In this particular case the Holy Spirit reminded the husband that one of God’s Hebrew names is El Shaddai. The traditional meaning of the name is “the one who is more than enough to meet any need.” The literal meaning is “the double-breasted one.” Thus El Shaddai, who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male and female, is the double-breasted one who is more than enough to minister to the love deficiency in the heart of any man.
이 특별한 경우에 성령님께서 그 남편에게 하나님의 이름들 중의 하나가 엘 샤다이 (El Shaddai)라고 상기시켰다. 그 이름의 전통적인 의미는 “어떤 필요도 채우기에 충분 그 이상이신 분” (the one who is more than enough to meet any need) 이다. 문자적 의미는 “두 개의 유방을 가진 분”이다. 그리하여 엘 샤다이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로) 분인데 그분은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 결핍에 봉사하기에 넘침 그 이상이신 두 개의 유방을 가진 분이시다.
As I shared this with this man and asked him to open his heart to El Shaddai, God began to minister to the depths of his heart and fill him with the love and security that should have been imparted in infancy. After allowing the Holy Spirit to do a deep work in his heart, the man reported that his need for physical intimacy had been quieted, and both he and his wife were now very satisfied with their sexual relationship.
나는 이 사람과 이것을 공유하고 그에게 그의 마음을 엘 샤다이 하나님께 열기를 요청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의 깊은 것들에 일하시고 유아기에 그에게 전달됐어야만 했던 사랑과 안정감으로 그를 채워주셨다. 성령님이 그의 마음에서 깊은 일을 하시게 허락한 후 그 사람은 육체적 친근감의 필요가 진정되었다고 말해주었고 그와 그의 아내 모두 지금 그들의 성생활에 아주 만족해졌다.
Since I ministered to that couple, I have encountered this situation many times at our Blessing Generations weekend events. I praise God that others have experienced a similar heart resolution when they received from God the impartation of blessing they were supposed to get from their mothers in infancy.
내가 그 부부에게 사역한 이후 나는 우리의 세대들을 축복하기 (Blessing Generations) 주말 행사들에서 여러 번 이 상황을 만났다. 나는 유아기에 그들의 엄마들로부터 받기로 되어있는 축복의 전달을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때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마음의 해결을 경험한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In Hebrew culture it was typical for a mother to be available to cuddle, hold, and meet the needs of her small chlildren. She was neither working outside the home nor involved in twenty five other activities as many mothers today are. A mother’s role was held in high esteem. There was very little chance that a child in that culture would not be cuddled, breast-fed, and nurtured because this was a mother’s top priority, and it is what society expected of her.
히브리 문화에서 엄마가 포옹하고 붙잡고 그녀의 작은 아이들의 필요들을 채워주기에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형적이었다. 그 문화에서의 엄마는 가정 밖에서 일하지도 않고 오늘 많은 엄마들이 그런 것처럼 25시간 다른 활동들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엄마의 역할은 높이 존중되었다. 그 문화에서 이것은 엄마의 최우선의 일이었기 때문에 한 아이가 포옹을 못 받고 모유를 못 먹고 보살핌을 받지 못할 일은 아주 적었고 그것은 사회가 엄마에게 기대하는 것이었다. (There was very little chance that a child in that culture would not be cuddled, breast⁃fed, and nurtured because this was a mother’s top priority, and it is what society expected of her.)
In contrast, I believe motherhood has been significantly devalued in our culture today. A stay-at-home mom is sometimes thought to be lazy or unproductive. Even among Christians there is an expectation that a woman should earn money, have a career, or be involved in ministry outside the home. Sadly in our culture there is a significant chance that a child could pass through early childhood without much cuddling and blessing through physical touch.
대조적으로 나는 모성이 (motherhood) 오늘날 우리 문화에서 의미심장하게 낮게 평가되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가사에 전념하는 엄마는 (a stay⁃at⁃home mom) 종종 게으르고 비생산적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기독인들 사이에서조차 한 여성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가정 밖에서 봉사에 관련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슬프게도 우리 문화 안에서 아이가 어린 초기 시절 육체적인 접촉을 통해 많은 포옹과 축복이 없이 그 시절을 통과할 의미심장한 가능성이 있다.
In reality, motherhood is a very high calling in the sight of God. Nurturing and sowing into the lives of her childre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a mother will do. I believe it should be the exception, not the norm, for a mother to work outside the home. I realize this would probably not even be possible for single moms and some other families in our current economic situation, but I believe this is God’s ideal.
사실상, 모성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최상의 소명(召命)이다. 엄마가 아이들의 삶 속으로 양육과 파종은 (nurturing and sowing into the lives of her children) 한 엄마가 할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엄마가 가정 밖에서 일하는 것은 규범이 (norm) 아니라 예외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싱글맘들과 우리의 현 경제적 상황에서 어떤 다른 가정들을 위해서는 어쩌면 가능치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이상(理想 궁극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Another interesting tradition in the ancient Hebrew culture is that children were frequently not weaned until after the first year. In our modern culture this would seem very strange, but I believe God had a purpose in this practice. Because they nursed for so long, babies learned to trust and depend on their mothers. Dependence is a natural phase of healthy emotional and spiritual development. Children who learn to depend on a mom to meet their needs develop a healthy sense of being loved and valued, and later in life they have an ability to trust others to help meet their needs
고대 히브리 문화에서 또 다른 흥미있는 전통은 어린 자녀들이 자주 출생 첫 해 이후까지 이유(離乳)를 당하지 않았다. 우리의 현대 문화에서 이것은 아주 이상하게 보일 것이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이 관행에 있어서 목적을 갖고 계시다고 믿는다. 그들이 그렇게 오래 모유로 양육했기 때문에 아기들은 자기들의 엄마를 신뢰하고 의지하기를 배웠다. 의존은 건강한 정서적, 영적 성장의 자연스런 국면이다. 엄마를 의존하기를 배우는 아이들은 사랑받고 존중받는다는 건강한 감각을 발전시키고 나중의 삶에서 그들은 그들의 필요들을 채우는데 돕는 타인들을 신뢰할 능력을 가진다.
On the other hand, children who never learn to depend upon a mother may learn to be independent and self-sufficient from an early age. In our modern culture some parents want their children to become independent as quickly as possible. There are two common reasons for this. One reason is social pressure, so they can keep up with those around them. The second reason is that we are very busy people, and we don’t want to be bogged down taking care of little children. If we can get our toddlers to do things on their own, that frees us to continue our busy lives
반면에 엄마를 의존하기를 결코 배우지 않은 아이들은 어린 나이 때부터 독립적이고 자기충족적이 되기를 배울지 모른다. 우리의 현대 문화에서 어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가능한 한 빨리 독립하게 되기를 원한다. 이것에는 두 가지 이유들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인 압박인데 그래서 그들은 그들 주변의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아주 바쁜 사람들이고 우리는 작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꼼짝 못하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아장거리며 걷는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들을 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로 자유하게 하여 계속 바쁜 생활을 계속하게 할 수 있다.
I suspect that we treat our children just the opposite of how God intended and how the ancient Hebrews treated children. We want small children to become independent as qucikly as possible. Then when they become teenagers – the time when God intended for us as parents to release our children to make their own choices as young men and women – we often try to control their choices and make them more dependent.
나는 우리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방법과 고대 히브리인들이 아이들을 대했던 방법과 정반대로 우리 아이들을 다룬다고 의심한다. 우리는 작은 아이들이 가능한 한 빨리 독립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이 십대 나이가 되었을 때 – 하나님이 우리가 부모로서 우리 자녀들을 놓아주어 젊은 남녀로서 그들 자신의 선택을 하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신 때 – 우리는 자주 그들의 선택들을 통제하려고 하고 그들을 더 의존적이게 만든다.
If children never develop basic trust and security that their needs will be met, then they may instead develop an independent spirit that refuses to receive wise counsel from their parents during their teenage years. This may motivate parents to attempt to control their teenagers’ choices. Weaning children a bit later made it almost impossible for an ancient Hebrew child to not learn dependence and basic trust in early childhood. This made for much more secure teenagers, who were far better spiritually and emotinally prepared to be released into adulthood.
만일 아이들이 그들의 필요들이 채워질 기본적인 신뢰와 안정감을 결코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대신에 그들의 십대 시절 동안 그들의 부모로부터의 지혜로운 조언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독립적인 정신을 발전시킬지 모른다. 이것은 부모가 그들의 십대 자녀들의 선택들을 통제하기를 시도하는 동기가 될지 모른다. 다소 좀 늦게 이유(離乳)를 하는 것은 고대 히브리 아이들이 이른 어린아이 시절에 의존과 기본적인 신뢰를 배우지 않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훨씬 더 안전한 십대 아이들, 훨씬 더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준비된 아이들이 성인으로 방출되게 준비되기를 만들어주었다.
버림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
Irrational Fear of Abandonment
The Physical presence of a mother who comforts and meets her child’s needs is a powerful form of blessing. Sometimes the enemy uses even the unavoidable absence of a mother to impart his message deep into the heart of a small child. Understanding this, it is important that we be alert to the devil’s schemes and disarm them as soon as we can. More than once I have seen an irrational fear of abandonment sown deep into the heart of a small child simply through the legitimate unavailability of a mother at a traumatic moment in life.
자기의 아이의 필요를 위로하고 채워주는 엄마가 몸으로 곁에 있는 것은 축복의 힘있는 한 형태이다. 종종 원수 마귀는 작은 아이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불가피한 엄마의 부재까지도 이용한다. 이것을 이해할 때 우리가 마귀의 책략들에 방심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곧 그것들을 무장해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나는 작은 아이의 마음속 깊히 뿌려진 비이성적인 포기에 대한 공포를 보아왔는데 그 공포는 삶에서 잊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정신적 충격을 준 순간에 그저 엄마의 합법적인 이용 불가능 때문에 말미암는다.
(through the legitimate unavailability of a mother).
One of the first times I encountered this was when praying for a woman I’ll call Jill. She said she frequently experienced an intense, irrational fear of abandonment and of not being cared for or protected. Jill was married to a wonderful, godly husband. However, her husband frequently traveled for business. Many times when Jill’s husband would be preparing to leave on a business trip, she would beg him not to go. Jill would tell him, “I’m so afraid you won’t come back. The plane might crash, and you could be killed. Or you might be kidnapped.” Trying to comfort her, Jill’s husband would cite statistics on the safety of modern aviation. He would reminded her of how frequently he traveled and that he always returned.
내가 이런 것을 우연히 만난 첫 번째 중 하나는 한 여성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 여인의 이름을 질(Jill)이라고 부르련다. 그녀는 자주 강렬하고 비이성적인 버려짐의 공포를 경험했고 또 돌봄을 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다는 공포였다. Jill 은 아주 대단하고 경건한 남편에게 결혼했다. 아무튼 그녀의 남편은 빈번이 사업차 출장 여행을 했다. 여러 번 그녀의 남편이 사업차 출장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그녀는 그에게 가지 말라고 간청하곤 했다. 질이 남편에게 말하곤 했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너무 두려워요. 비행기가 충돌할지 모르고 당신이 죽을 수도 있어요. 혹은 당신이 납치를 당하지도 모르지.” 그녀를 위로하려고 애쓰면서 그녀의 남편은 현대의 비행의 안정성에 대한 통계를 인용하곤 했다. 그는 아내에게 얼마나 그가 자주 여행을 했고 그가 항상 귀가했는지를 상기시키곤 했다.
No matter how her husband tried to comfort her, Jill was still terrified every time he left. At times Jill also was fearful that her husband was having an affair and would leave her for someone else. This was extremely hurtful and frustrating for her husband, as he had never even been interested in another woman, nor had he given his wife reason to doubt his commitment to her. Again, no matter how her husband tried, neither reason nor prayer would allay Jill’s fear.
그 남편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어도 질은 여전이 그가 출발할 때 겁에 질렸다. 가끔은 질이 그녀의 남편이 업무를 하고 있고 그리고 나서 다른 여자를 찾아 그녀를 떠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이것은 그녀의 남편에게 극도로 마음에 상처가 되고 좌절감을 주었다. 그가 다른 여성에게 흥미를 느낀 적도 없고 그 아내에게 그가 아내에게만 전념한 것을 의심할 이유를 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남편이 얼마나 노력을 하더라도 어떤 이유든 기도든 질의 공포를 가라앉히지 못하곤 했다.
Jill and her husband explained their situation to me during a Blessing Generations Experience. The team and I felt led to simply ask the Lord to show Jill when this fear of abandonment began. After waiting on the Lord for just a few seconds, Jill began to shake with fear and cry uncontrollably. When we asked her what she was experiencing, Jill told us the Holy Spirit had reminded her of a terrifying experience that she endured at five years old.
질과 그 남편은 세대 축복 경험 (Blessing Generations Experience) 모임 동안에 내게 그 상황을 설명했다. 그 팀과 나는 그저 주님께 요청하도록 이끌림을 느껴서 주님께서 질에게 이 버림받음의 공포가 시작한 때를 보여주시기를 구했다. 단 몇 초 동안 주님의 응답을 기다린 후에 질이 공포로 몸을 흔들고 통제할 수 없게 울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녀에게 그가 경험하고 있는 것을 물었을 때 질은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그녀에게 다섯 살 때 견디었던 두려운 경험을 상기시키셨다고 말했다.
Jill had been taken to the hospital because she needed surgery to correct a serious heart condition. She remembered having significant apprehension just from the concern her parents expressed about the surgery, but this was not the worst part. Jill’s parents were not allowed to stay with her in the hospital overnight, so when evening came, all they could do was reassure her that everything would be fine that night and then go home.
질이 심각한 심장 상태를 바로 잡으려고 수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병원에 데려가진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부모가 수술에 대해 표현된 바로 그 걱정 때문에 의미있는 불안을 가졌던 것을 기억했다.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것은 아니었다. 질의 부모들은 밤에 병원에서 그녀 곁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이 되었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그 딸에게 그 밤에 모든 게 잘 되거라고 재확신시키고 귀가하는 것이었다.
Soon after her parents left, an intense fear hit Jill’s heart. Here she was five years old with a serious medical condition, not knowing whether she was going to live or die, left in an unfamiliar place. She was terrified all night long and felt abandoned and unloved by her parents. The terror worsened through the night as Jill experienced strange noises, unusual smells, and unfamiliar constantly poking her with needles and putting things in her mouth, nose, and ears.
그녀의 부모가 떠나자 곧 강렬한 공포가 질의 마음을 때렸다. 자, 그녀는 다섯 살이고 심각한 의학적인 상태에 있고 살지 죽을지를 모르고 있었고 익숙치 않은 장소에 남겨졌다. 그녀는 밤새 두려웠고 부모에게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 공포는 질이 기이한 소음들과 보통의 냄새가 아닌 냄새들과 친숙하지 못하고 계속 바늘들로 찌르는 것, 입안과 코와 귓속으로 어떤 것들을 집어넣은 것을 경험할 때 더 악화되었다.
The heart of this five-year-old girl was crying out, “Where’s my dad? Where’s my mom? Don’t they care about me? Don’t they love me? I’m all alone. All the people I love and in whom I have trusted have abandoned me!” The enemy then took advantage of this circumstance to impart an emotional lie deep into Jill’s heart, telling her, “The reason your parents aren’t here is that they don’t love or care about you. You are not important to them, and they will never come back to help you. You’re abandoned, and nobody will ever take care of you.”
다섯 살 소녀 아이의 마음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빠는 어디 있어? 엄마는 어디에? 그들은 나를 염려하지 않는가?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나는 완전히 혼자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내가 신뢰했던 사람들은 나를 버렸어!” 원수 마귀가 이 환경을 이용하여 질의 마음 안으로 깊히 정서적 거짓말을 전달했다. 이렇게 말한 것이다. “네 부모들이 여기 있지 않는 이유는 너를 사랑하지 않고 너를 염려하지 않아서란다. 너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그들은 너를 도우러 결모 돌아오지 않을거야. 너는 버림받았어. 아무도 너를 결코 돌보지 않을 거야.”
When Jill’s parents returned the next morning, they had no idea the terror she had lived through the night. They reassured her that they were there now and all would be well, but the damage had been done. The enemy had sown a “virus” of irrational fear of abandonment deep into Jill’s heart that persisted on into adulthood.
질의 부모들이 이튿날 병원에 돌아왔을 때 그 딸이 밤새 겪은 그 공포를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들은 그녀에게 지금 거기 있고 모든 게 잘 되리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손상되는 일이 이미 벌어졌다. 원수 마귀가 질의 마음속 깊이 버림받음의 비이성적인 공포의 바이러스를 심어버렸다. 그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한 것이다.
After the Lord brought this experience back to Jill’s memory, we were able to ask her to confess the deep feelings of fear to the Lord. We then asked Him what He had wanted to impart to her that night in the hospital when she was a little girl. That day Jill had an amazing encounter with the living, resurrected Lord Jesus Christ, who began to speak His truth to her. He removed the deep-seated fear and replaced it with total peace and security in His love. Perfect loves casts out fear (1 John 4:18). Jill later reported to us that since that time of ministry, she has never again experienced the fear of her husband being killed or not returning from a business trip. Nor has she been afraid that he would leave her for another woman.
주님이 질의 기억으로 이 경험을 가져오신 후 우리는 깊은 공포의 감정들을 주님께 고백하라고 그녀에게 요청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주님께 주님께서 그녀에게 어릴 때 병원에서 그 밤에 무엇을 전달하기를 원하셨는지 물었다. 그 날 질은 살아계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놀라운 해후(邂逅)를 가졌다. 주님은 그녀에게 그분의 진리를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깊히 자리잡은 공포를 제거하시고 그분의 사랑 안에 있는 전체적인 평강과 안정으로 그 자리를 대신 채워주셨다. 완전한 사랑은 공포를 몰아낸다 (요일 4:18). 질은 후에 우리에게 그 사역의 시간 이후로 그녀가 자기 남편이 살해되거나 출장에서 귀가하지 않을 공포를 다시 경험하지 않았다고 알려줬다. 그녀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찾아 그녀를 떠날 것이라고 두려워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Jill’s experience again emphasizes the power of a parent’s presence, touch, and comfort to bless the identity of a small child and bring a settled sense of peace and security. Even when it is no fault of the parents, the enemy can use their absence to impart a deep fear into the child’s heart. This is not something to be worried about but only to be aware of. Had Jill’s parents realized the emotional trauma she experienced as a little girl that night in the hospital, they could have prayed for her immdediately after the experience and removed the emotional lie and helped her open her heart to receive truth from the Lord. Such prayer would have spared her the pain of having ongoing fear of abandonment in her adult life.
질의 경험은 또 다시 부모의 곁에 있음, 접촉, 작은 아이의 정체성을 축복하는 위로의 능력을 강조하고 평강과 안전의 안정된 감각을 가져온다. 부모들의 잘못이 아닐 때에라도 원수 마귀는 아이의 마음 안에 깊은 공포를 전달하기 위해 부모의 부재(不在)를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은 걱정할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그에 대해 알아야 할 어떤 것이다. 질의 부모들이 그녀가 그 밤 병원에서 작은 소녀로서 경험한 그 정서적 트라우마를 깨달았다면 그들은 그 경험 후에 즉각 그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정서적 거짓말을 제거하고 주님으로부터의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녀가 마음을 열게 도왔을 것이다. 이런 기도는 그녀가 성인의 삶에서 버림받음의 계속적인 공포를 가지는 고통을 받지 않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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