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scripts (한글 강의록)/부모축복의 힘

제1장 (The Power of a Parent's Blessing)

코필아카데미 2024. 12. 27. 08:47

                           제1장 에서의 울음 (The Cry of Easu)

 In Gen. 27 there is a striking passage containing a message from a son to his father. In verse 34 Esau “cried out with an exceedingly great and bitter cry, and said to his father, ‘Bless me, even me also, O my father!’” This cry from the heart of the son, Esau, to his father, Isaac, is the cry of many modern-day adult or adolescent children to their own fathers and mothers.

창 27:34 에서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극도로 큰 목소리와 비통한 울음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나에게도 또한 축복하소서. 아버지!” 
이 통곡은 오늘날 성인이 된 자녀들이나 사춘기의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하는 외침과 같다.

 

It is evident that God intended for every child to be blessed by his father and mother at many times in life. Throughout Scripture we see Hebrew parents laying hands on their children and imparting a blessing with words and actions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성장 과정 곳곳에서 (성장의 시기 여러 때에) 그들 부모에게서 축복받도록 의도하신 것이 분명하다. 성경을 통털어 보면 우리는 히브리 부모들이 자녀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말과 행동으로 복을 전달해 주는 것을 본다.

In the biblical account of the blessing Isaac was to impart to his sons Jacob and Esau, we see the power and importance of parental blessing. Isaac, his wife, and his sons all understood that a father’s blessing upon his firstborn son had tremendous power to cause that son and his family to prosper for generations into the future. This blessing was understood to be so powerful that Jacob, with help from his mother, Rebekah, was willing to lie and cheat in order to obtain the blessing that rightfully belonged to his older brother, Esau.

이삭이 그의 아들들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는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읽을 수 있고 우리는 자녀 축복의 중요성을 보게 된다. 이삭이나 어머니 리브가나 야곱, 에서 모두 장자에게 축복하는 것이 대대로 그 가문이 번성하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야곱이 그 복을 받게 하려고 했다.

 


 And Esau said to his father, “Have you only one blessing, my father? Bless me – me also, O my father!” And Esau      lifted up his voice and wept . . . So Esau hated Jacob because of the blessing with which his father blessed him, and Esau said in his heart, “The days of mourning for my father are at hand; then I will kill my brother Jacob.”
                                      (Gen. 27:38, 41, NKJV)

에서가 그 아비에게 말했다. “아버지, 한 개의 복만 갖고 계십니까? 나에게도 축복해 주세요. 아버지!” 그리고 에서는 목소리를 높혀 울었다 . . . 그래서 에서는 야곱이 아버지에게서 그 복을 받은 것 때문에 야곱을 미워했고 마음에 다짐했다. “아버지의 죽을 날이 가까웠으니 내가 야곱을 죽이겠다.”

 

Why did the stolen blessing make Esau so angry that he wanted to murder his brother? Esau was devastated because he understood something very few people realize in our modern times.  Esau knew that a father holds a key to his children’s future that, when used, releases them to prosper. When we follow the life of Jacob through several generations, we observe that Jacob and his family multiplied in number, became exceedingly wealthy, remained healthy, did not experience plagues and sickness, conquered their enemies, and ruled in their land for many generations. The tribe of Esau, on the other hand, did not prosper, did not become large in number, did not become wealthy, and was frequently conquered by enemies.

도둑맞은 복 때문에 에서는 왜 그렇게 분노했고 그의 동생을 죽이기를 바랬을까? 에서는 오늘 우리의 시대에 아주 적은 사람들이 깨닫는 무언가를 이해했기 때문에 망연자실했던 것이다. 에서는 아버지란 분이 자녀들의 미래의 번성을 위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수 세대에 걸친 야곱의 삶을 추적하면 알 수 있다. 야곱과 그의 가족의 수가 늘었고, 넘치게 부요해지고, 건강했고, 역병들과 질병을 경험하지 않았고, 원수들을 정복했고, 그들의 땅에서 많은 세대 동안 통치했다. 반면에 에서의 족속은 번성하지 않았고 수에 있어서 크게 되지 않았고, 부요해지지 않았고 자주 원수들에게 정복을 당했다.

 

I have observed the same phenomenon in many modern families. Children whose parents blessed them tend to prosper in their adult lives, and children whose parents never blessed them  tend to languish. Why is this ? I believe it is because God established the power of blessing and meant it to function in every family on earth. Blessing is God’s primary mechanism of imparting His image (thoughts, feelings, and experience) of identity (“Who am I?”) and destiny (“Why am I here?”) deep into a person’s heart. This is of critical importance because vision for life, physical and emotional health, financial prosperity, and family relational dynamics are all directly linked to images of God, self, and others imprinted in the inner man (soul) of every person (3 John 2).

나는 많은 현대의 가정들에서 동일한 현상을 목격해왔다. 부모들의 축복을 받은 자녀들은 그들의 성인기에 번성하는 경향이 있고 자녀들을 축복하지 않은 부모의 자녀들은 침체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은 지상의 모든 가정에서 축복의 능력이 작용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축복은 사람의 마음 깊숙이 정체성(identity) (“내가 누구지?”)와 사명 (destiny) (“내가 여기 왜 있지?”) 에 대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생각, 감정, 경험) 전해 주는 하나님의 주요 장치이기 (mechanism) 때문이다. 이것이 아주 중대한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삶을 위한 비젼, 육체적 정서적 건강, 경제적 번영, 가정의 관계성, 역동성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이미지들과 모든 사람의 속 사람 (soul) 안에 새겨진 자아와 타인들의 이미지들과 직접 연관되기 때문이다. (요한3서 2절)

 

 Let’s dig little deeper into identity and destiny and how these concepts relate to blessing and cursing. Whether we realize it or not, every day each one of us answers two critical questions: “Who am I?” and “Why am I here?” We answer these questions based upon preexisting images established deep inside. How we have answered these questions determines the way we respond to life’s circumstances.

정체성과 사명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이 개념들이 축복과 저주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보자. 우리가 그것을 깨닫든지 아니든지 매일 우리 각 사람은 두 가지 중대한 질문들을 묻는다: “나는 누구지?” 그리고 “나는 왜 여기 있지?” 우리는 이 질문들에 마음 깊이 세워진 선재적인 이미지들에 근거하여 대답한다. 우리가 이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했는지가 우리가 삶의 환경들에 반응하는 방식을 결정짓는다.

 

As I mentioned earlier, the first question - “Who am I?” - pertains to identity. Very simply stated, identity is an individual’s perception of himself. The primary issue at stake in dealing with identity is value (“What am I worth?”). So when we speak about identity, we are speaking about a person’s perception of himself and the value of his life and being.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첫째 질문, “나는 누구지?” 이것은 자아 정체성과 연관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정체성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지각(知覺)이다. (perception). 정체성을 다루는 데 있어서 위기에 처한 주요 문제는 가치이다. (“나는 무슨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우리가 정체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한 개인의 지각과 그의 삶과 존재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The second question - “Why am I here?” - pertains to destiny. This has to do with an individual’s perception of his function and significance on earth. The primary issue at stake in dealing with destiny is purpose (“Why am I here?” What am I supposed to do?“). Identity and destiny are key qualities that God intended for us to have correctly imparted and established in our lives. The course for our adulthood is set through this impartation of identity and destiny, which we receive as children.

두 번째 질문, “나는 왜 여기에 있지?” 이 질문은 사명(destiny)과 연관된다. 이것은 지상에서 그의 기능과 중요성에 대한 개인적인 지각과 관계를 맺고 있다. 사명을 다루는데 있어서 위기에 처한 주요 문제는 목적이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정체성과 사명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삶 속에서 바르게 주고 바르게 세워지기를 의도하신 주요 자질들이다. 우리의 성인 시기를 위한 과정이 정체성과 사명의 분여(分與)를 통해 확정되는데 이것들을 우리는 아동기에 받는 것이다.

 

It is and has always been God’s intention to impart to each person Hi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especially in particular stages in life. He has appointed special agents on this earth to ensure that Hi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is revealed in our hearts. While many people may influence our lives, these special agents of God who are anointed to impart identity and destiny are not angels, teachers, coaches, or pastors. They are parents.

각 사람에게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메시지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지금 있고, 항상 있어온 것인데 특별히 삶의 특별한 단계들에서 그렇다. 그분은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그의 메시지가 우리 마음 안에 계시되었다고 확신시키는 특별한 대리자들을 (agents) 지상에 임명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반면에 정체성과 사명을 주라고 임명된 이 특별한 하나님의 대리자들은 천사들이나 교사들이나 코치들이나 목사들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들이다.

 

If parents do nothing else regarding their children, one task God has given them is to make sure their children receive Hi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during their growing-up years. In contrast, Satan’s purpose is to access these agents of God and use them to impart to children his alternate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만일 부모들이 그들 자녀들에 관해 다른 무엇도 아니 한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한 과제는 자녀들이 성장하는 동안에 정체성과 사명에 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들의 자녀들이 받아들이게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의 이 대리자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을 사용하여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사탄의 바꿔치기한 메시지를 (alternate message) 자녀들에게 주는 것이다.

 

 Imparting God’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to their children is what I call “blessing.” Imparting Satan’s alternate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is what I refer to as “cursing.” Many times parents are unwillingly used to impart a spiritual and emotional message from the devil rather than from God.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자녀들에게 주는 것은 내가 일컫는바 “축복”이다.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사탄의 다른 메시지를 주는 것은 내가 언급하는바 “저주”이다. 되풀이 해서 부모들은 의도하지도 않은 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오는 영적이고 정서적인 메시지를 주곤 한다.

                 사탄의 메시지 대(對) 하나님의 메시지
                 Satan’s Message vs. God’s Message

What is the basic difference between God’s message and Satan’s? Satan’s message of identity goes something like  this:

“You are nothing, nobody. You have no value. There is something terribly defective and wrong with you. You don’t belong here. You’re stupid. You’re ugly. You’re too short (or tall), too fat (or skinny). Your nose is too big. Your skin is the wrong color. You’re a mistake. Nobody wanted you to be born. You shouldn’t even be here. You’re just a product of someone’s lust. You’re no loved, and no one will ever love you, because you’re unlovable.” He may also attack a child’s gender identity, saying, “You’re the wrong sex. Your parents wanted a girl (or a boy). You’ll never be accepted, and your parents will always despise you.” These are the kinds of message the devil wants to impart to children early in life.

하나님의 메시지와 사탄의 메시지 사이에 기본적인 차이가 무엇인가? 정체성에 대한 사탄의 메시지는 이와 같이 진행한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고 중요한 사람도 아니야. 너는 가치가 없는 인간이야. 너에게는 끔찍하게 결함이 있고 잘못된 것이 있어. 너는 여기에 속하지 않아. 너는 어리석다. 너는 추악하다. 너는 너무 키가 작아(혹은 너무 커), 너무 뚱뚱해 (혹은 너무 말랐어). 네 코는 너무 커. 너의 피부는 잘못된 색이야. 너는 착오야. 아무도 네가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았어. 너는 여기에 있어서도 안 돼. 너는 어떤 사람의 욕정의 산물이야. 너는 사랑받지 않고 누구도 너를 결코 사랑하지 않을거야. 왜냐고? 너는 사랑받을 수 없는 자니까.” 사탄은 또한 그 아이의 성 정체성을 공격할 수도 있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너는 잘못된 성을 타고 났어. 너의 부모들은 딸을 (혹은 아들) 원했거든. 너는 결코 용납되지 않을거야. 그리고 네 부모들은 항상 너를 경멸할 거야.” 이런 말들이 마귀가 인생 초기의 자녀들에게 주기를 원하는 메시지의 종류들이다.

 

With regard to destiny (“Why am I here?”), Satan’s message sounds something like this: “You shouldn’t be here. You don’t belong, and you don’t fit. You have no purpose, no destiny. You are just consuming oxygen, food, and water on the planet. You are an utterly worthless failure. You are totally incompetent and unproductive. You are completely inadequate in every area of life. Even if you had a destiny from God, you are so defective that even God can’t help you complete your destiny. Someone should write a book about your life and call it The Seven Habits of Highly Defective People. You’ll never succeed at anything. Nothing will ever work out for you.”

사명에 관하여 (“내가 왜 여기 있지?”) 사탄의 메시지는 이처럼 들린다. “너는 여기 있어서는 안 돼. 너는 소속되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이 적절치 않아. 너는 목적도 없고 사명도 없어. 너는 이 지구상에서 그저 산소와 음식과 물을 소비하고 있어. 너는 지독하게 가치없는 실패작이야. 너는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비생산적이야. 너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히 부적합해.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너는 너무 결함이 많아서 하나님이라도 네가 너의 사명을 완성하는데 도울 수 없어. 누군가가 너의 삶에 대해서 책을 한 권 써야만 한다면 이런 제목을 붙일 거야. ‘아주 결함이 많은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들.’ 너는 무슨 일에나 결코 성공하지 못할 거야. 아무것도 너를 위해 성취하지 못할 거야.”

 

God’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is the opposite. God’s answer to the question of identity (“Who am I?”) is: “I love you. You mean everything to Me. You are worth the life of My Son, Jesus Christ, because that is what I paid for you. You belong, and you’re supposed to be here. You’re very special. You are unique. No one else is like you. You’re beautiful. I love your hair, your eyes, your skin – everything about you. When I look in your face, you make Me smile. Perhaps your parents weren’t expecting you, but I was.

You were not a surprise to Me. Your mother carried you for nine months in her womb, but I carried you for thousands of years in My Spirit. And at just the right time I released you to be born on the earth. I knew exactly who you would be and when you would be born. You came right on time. You are the correct sex, exactly who I created you to be. Nothing wrong, nothing defective. You can expect to be loved and valued by others because I love you and created you to be loved.”

정체성과 사명에 관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정반대이다. 정체성 (“나는 누구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있어 모든 것을 의미한단다. 너는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줄 만한 자야.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너를 위해 값을 지불한 것이니까. 너는 내게 속하고 여기 있도록 되어 있어 (있어야만 해). 너는 아주 특별하다. 너는 유일하다. 다른 누구도 너와 같지 않지. 너는 아름다워. 나는 너의 머리카락을 좋아하고 너의 눈, 너의 피부도 그렇다. 너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내가 네 얼굴을 들여다볼 때 너는 나를 웃게 만든단다. 아마 너의 부모들은 너를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지 모르지. 그러나 나는 기대하고 있었어.

너는 내게 놀라움이 아니었어. (하나님이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 너의 엄마는 그녀의 태중에 너를 9개월간 품고 있었지. 그러나 나는 내 영 안에서 수천 년 동안 너를 데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에 나는 너를 지구상에 태어나게 보냈지.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될 건지, 네가 언제 태어날 건지 정확히 알았단다. 너는 올바른 시간에 왔지. 너는 올바른 성을 가진 자이고 내가 너를 그런 성으로 정확히 창조했단다. 아무것도 잘못된 게 없고 흠이 있는 게 없지. 너는 사랑받기를 기대할 수 있고 타인들에게서 존중받기를 기대할 수 있지. 왜냐하면 내가 너를 창조했고 너는 사랑받게 창조되었으니까.

 

God’s answer to our questions about destiny is much the same. He says, “You belong, and you are here because I created you and uniquely gifted you to be here at this time. You have a unique purpose and destiny that I designed you for, that no one else can fulfill. No one else can be a parent to your children and a child to your own parents. No one else has the unique life experiences, gifts, and skills that you have.

You are completely adequate and competent to fulfill your purpose and destiny, but you won’t have to do it alone. I have marvelous companions who will accompany you on your journey and help you fulfill your purpose. I myself will help you and will always be with you. I will never leave you or forsake you. You can expect to prosper and succeed in all I have called you to do in your life. I love you!”

사명에 대한 우리의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아주 똑같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너는 소속되고 내가 너를 창조했고 유일하게 이 시간 여기에 있도록 너에게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그 일을 하도록 계획한 유일한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있고 다른 누구도 그것을 완수할 수 없다. 다른 누구도 너의 자녀들일 수 없고 또 너의 부모들에게 자녀일 수 없다. 다른 아무 사람도 네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삶의 경험들과 은사들과 기술들을 가질 수 없다.

너는 너의 목적과 사명을 완성하기에 아주 적합하고 능력이 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혼자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너의 행로에 너를 동반하고 너를 도와 너의 목적을 성취하게 도울 경이로운 동료들을 갖고 있다. 나 자신이 너를 도울 것이고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결코 너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다. 너의 삶에서 네가 하도록 내가 너를 부른 모든 일에서 번영하고 성공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탄의 거짓말들의 효과
                      The Effect of Satan’s Lies

Many times parents are simply unaware of the power they have as agents of God or of Satan. Not many parents wake up in the morning and say to themselves, “I wonder how I can become Satan’s agent today and impart his message to my child on a deep spiritual and emotional level.” However, many parents do exactly this without realizing what they have done. That is precisely what happened to Joe.

여러번 부모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혹은 사탄의 대리자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그저 모르고 있다. 많지 않은 부모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독백한다. “나는 내가 오늘 사탄의 대리자가 되고 깊은 영적, 정서적 수준에서 내 자녀에게 사탄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 의아하다.” 아무튼, 많은 부모들이 그들이 해버린 것을 깨달음이 없이 정확하게 이것을 한다. 죠우(Joe)에게 일어난 것이 명확하게 그런 것이다.

 

Joe was a well-dressed, successful businessman in his late thirties when we first met. He and his wife had come to one of the Ancient Paths weekend events our ministry hosts. As we moved into the small-group ministry time, Joe began to share, somewhat sheepishly, how much of a problem anger had become in his life.

죠우는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30대 후반 나이에 잘 차려입고 사업에 성공적인 사업가였다. 조우와 그의 아내는 우리의 사역이 주최하는 옛길들 (Ancient Paths) 주말 행사 중 하나에 왔었다. 죠우는 주뼛주뼛하며 분노가 그의 삶에서 얼마나 큰 문제점이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Anger causes me to embarrass myself, and then I feel guilty,” Joe explained. He went on to tell us that just a couple of months earlier, he was leaving a shopping mall parking lot and heading into a stream of traffic. Just as he was about to move ahead into the traffic, he realized there really wasn’t enough space between the cars for him to enter the traffic flow, so he stopped to wait for a better opening in traffic. Apparently surprised by Joe’s sudden decision not to move out in the traffic, the man in the car behind him blew his horn. This is where Joe’s story took a rather awkward turn.

“분노가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고 그리고나면 나는 죄책감을 느껴요.” 죠우는 설명했다. 그는 우리에게 계속 말했다. 딱 두 달 전에 그는 쇼핑몰의 주차장을 떠나 자동차들의 흐름 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가 막 자동차 행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바로 그때 그가 끼어들기에 차간 거리가 정말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좀 더 괜챦은 기회를 기다리기 위하여 정지했다. 그의 끼어들지 않으려는 급작스런 결정에 분명히 놀라서 그 뒤의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경적을 울렸다. 죠우의 이야기가 다소 보기 흉하게 바뀐 것이 이것 때문이다.

 

“I was so infuriated that he would honk at me, I slammed the gearshift into park and jumped out of my car, almost ripping the door off the hinges on the way,” Joe said. “I stormed back to the man’s car, grabbed his shirt and jerked his face up through the open window. Then I let him know what I thought of him. The whole time I was screaming at the driver, I was doing all I could to keep from punching him.”

“나는 그가 내게 경적을 울리곤 해서 몹시 화가 났지요. 나는 기어를 주차로 확 밀어넣고 문짝이 돌쩌귀를 벗어나 노상에 떨어질 정도로 쾅 닫고 밖으로 뛰어내렸어요. 나는 그 사람의 차로 몰아치듯이 가서 그의 셔츠를 잡고 그의 얼굴을 열린 차창을 통해 확 들어올렸지요. 그리고나서 나는 내가 그에 대해 생각한 것을 알게 했지요. 내가 그에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내내 나는 그에게 주먹질을 안 하려고 모든 노력을 하고 있었어요.”

 

When Joe ran out of profanities to spew and thought he had made his point, he returned to his car, and tremendous guilt and shame began to overwhelm him. “I felt almost as if someone else had been shouting those words,” Joe said. “‘Who was that crazy, raging maniac?” I thought to myself. ‘What kind of testimony of the love of Christ did I just present to that man?’ Then I remembered the bumper sticker my wife had recently put one both our cars, ‘Honk if you love Jesus.’ I just sank into a pit of shame and depression all the way home.”

죠우가 내뱉은 모독적인 말들을 토해내고서 자기가 목적을 관철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자기 차로 돌아왔고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감이 그를 엄습하기 시작했다. “저는 거의 어떤 다른 사람이 그 말들을 고함치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어요. 정신 나가고 격분하는 그런 미친 사람말입니다. 저 혼자 생각했어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무슨 종류의 증언을 내가 그 사람에게 방금 제시했을까?’ 그리고나서 나는 내 아내가 최근 우리 자동차들에 붙인 범퍼 스티커를 기억했다. ‘당신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경적을 울려라.’ 나는 금방 집에 도착하기까지 수치와 우울의 구덩이 안으로 가라앉았습니다.”

 

Joe said he had gotten so angry with his wife, he was afraid he might physically strike her.  When his two-year-old son would wake up crying at night, Joe would have to get out of the house and take a walk; otherwise, he feared he might hurt his young son. “I’ve prayed and prayed to get rid of this anger,” Joe confided. “I’ve repented of it, but nothing seems to work. It’s ruining my life and my marriage.”

죠우는 자기가 아내에게도 그렇게 화를 냈었다고 말하고 아내의 몸을 때릴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의 두 살짜리 아들이 밤에 울면서 깨곤할 때 죠우는 집 밖으로 나가야만 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그의 어린 아들을 상처낼까 두려웠다고 했다. “저는 이 분노를 제거하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요. 조우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저는 그것을 회개했어요. 그러나 아무 것도 작동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것은 제 인생과 내 결혼을 망치고 있습니다.”

 

Joe was clearly exasperated, and I felt for him. I suggested to Joe and his wife that we pray and ask the Holy Spirit to reveal the root cause of the anger in his life. Joe agreed, so we began to pray. We simply asked the Lord to show Joe anything that was pertinent to his anger and quietly waited. After a few minutes I asked Joe if the Lord had shown him anything.

죠우는 분명히 화가 나 있었고 나는 그를 위하여 느낌이 있었다. 나는 죠우와 그의 아내에게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님이 그의 삶의 분노의 뿌리되는 원인을 보여주시도록 요청하자고 제안했다. 죠우는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저 주님께 죠우에게 그의 분노에 관계된 어떤 것을 보여주시라고 구했고 조용히 기다렸다. 몇 분 후에 나는 죠우에게 주님이 그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셨느냐고 물었다.

 

“No,” he replied, “nothing pertinent.”
“What came to your mind?” I pressed.
“Oh, just a dumb experience I had years ago when I was a kid,” he said. “As a matter of fact, I had forgotten it until now, but it doesn’t have anything to do with my life today.”

“아니오. 관계있는 아무 것도 없어요.”
“당신에게 무슨 생각이 왔소?” 나는 재촉했다.
“오, 제가 어릴 적 수년 전에 내가 겪은 말하기 힘든 경험이죠. 사실, 저는 지금까지 그것을 잊고 지냈습니다만 오늘 내 삶과는 어떤 관계도 없는 것이지요.”

 

I urged Joe to share the experience, but he maintained that it wasn’t pertinent. Finally I told him, “We asked the Holy Spirit to reveal to you anything that was important, and this experience was the only thing that came to your mind. So why don’t we just trust that God was reminding you of that experience for a reason, and perhaps we will discover that it is relevant.”

나는 그에게 그 경험을 함께 나누도록 권했으나 그는 그건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마침내 나는 그에게 “우리는 성령님께 중요한 무언가를 당신에게 보여주시라고 요청했고 그 경험은 당신에게 생각난 단 한 개의 경험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이 당신에게 생각나게 하신 이유라고 그저 믿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러면 우리는 그것이 관계있는 거라고 발견할 것이오.”

 

I have found that many times when people have been deeply wounded through the impartation of the devil’s message of identity and/or destiny, especially by parents and other influential individuals, the pain is so great that they bury it deep inside and never really deal with it. Because the pain is so intense, they may block key experience from their memories entirely, and when those memories are brought to the surface, the individuals are completely out of touch with the emotional pain brought on by that event.

내가 발견한 것은 여러번 사람들이 정체성 그리고 (혹은) 사명에 대한 마귀의 메시지를 받음을 통해서 깊히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 특히 부모나 다른 영향력 있는 개인들 때문에 받았을 때 그 고통이 너무 커서 그들은 그것을 내면 깊숙이 묻어두고 그것을 참으로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고통이 그렇게 심할 때 사람들은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통채로 주요 경험을 봉쇄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표면에 올라왔을 때 그 개인들이 그 사건 때문에 드러난 정서적 고통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한다.

 

As a result, people will oftentimes say things such as “Oh, I’ve dealt with that,” or “I forgave my dad a long time ago for that,” or “Oh, that doesn’t hurt any more.” Christians will even say, “I’ve put that under the blood of Jesus. He has taken that burden away.” However, many times they have not released that pain to the Lord but rather have stuffed it deep inside.

그 결과로서 사람들은 자주 이같은 것들을 말한다. “오, 나는 그것을 다루었다.” 혹은 “나는 오래 전에 그것에 대해 내 아버지를 용서했다.” 혹은 “오, 그것은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아.” 라고. 기독인들 조차 이같이 말한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 아래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분이 그 짐을 치워버리셨다.” 아무튼, 여러번 그들은 그 고통을 주님께 넘겨버리지 않았고 속에다 깊숙이 쑤셔넣었다.

 

The truth is, there is still a wound that has never been healed but has only been covered over as an oyster covers a grain of sand. The prophet Isaiah described this state when he wrote, “From the sole of the foot even to the head there is nothing sound in it, only bruises, welts and raw wounds, not pressed out or bandaged, nor softened with oil” (Isa. 1:6).

사실인즉, 여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처가 있으나 마치 굴이 모래 알갱이를 가린 것처럼 가리워진 채로 있었을 뿐이다. 선지자 이사야가 그 상태를 이같이 묘사했다.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그 안에 성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타박상들, 매 맞은 자국들, 금방 맞은 상처들 뿐이지만 고름을 짜내지 못하고 붕대를 감지도 못하고 기름으로 부드럽게 되지도 못하고 있다.” (사 1:6)

 

Imagine that you suffered a physical laceration of your arm. Instead of cleaning it out and treating the wound, you never tended to it and simply left it open for all kinds of dirt to get inside. After a while the wound would scab over and might even look as if it were healing, but beneath that outer layer would be a reservoir of infectious puss. In such a situation each time pressure is put on the wound, infectious puss would be released into the body. Eventually, for true healing to come, someone would have to lance the wound, irrigate the infection, cleanse the wound, and close it back up.

당신의 팔이 열상(裂傷)을 겪는다고 상상해보자. 그 부위를 씻어내고 그 상처를 치료하는 대신 그것을 돌보지 않고 온갖 모든 먼지가 안으로 들어가게 열어둔 채 그저 놔두었다. 얼마 후에 상처에 딱지가 덮히고 그 상처가 치료된 듯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바깥 피부층 아래에 감염된 고름이 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결국 진짜 치료가 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상처를 절개하고 감염을 씻어내고 상처를 깨끗케 하고 봉합해야만 할 것이다.

 

This is the picture Isaiah is giving us regarding the inner man. When someone has been deeply wounded spiritually and emotionally, a spiritual cleansing must occur. If it does not, that person might walk around all his life with severe spiritual or emotional “infections” caused by deep wounds that have never been “pressed out or bandaged, nor softened with oil.”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가 속 사람에 관해서 우리에게 주고 있는 그림이다.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깊이 상처를 받았을 때 영적인 청소가 일어나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평생토록 상처에서 “짜내지 않고 붕대로 싸매어지지 않고 기름으로 부드럽게 되지 아니한” 상처로 인해 생긴 심각한 영적, 정서적 “감염들”을 갖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Such was the case with Joe. Finally he agreed to share the childhood experience that had come to his mind during prayer, though he continued to maintain that it was not relevant. He said it was so insignificant that he hadn’t even remembered it unitl that moment, and, besides, it didn’t hurt any more because he had forgiven his dad years ago.

죠우의 경우가 이런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기도하는 동안 마음에 떠오른 어린 시절의 경험을 함께 나누기로 동의했다. 비록 그가 그것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계속 주장했지만. 그는 말하기를 그건 무의미한 것이어서 그는 그 순간까지 그것을 기억조차 하지 않고 지냈다고 했고 그 외에도 그것은 그가 여러 해 전에 아버지를 용서했기 때문에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

 

Joe said that one Friday night when he was eight years old he was allowed to have two friends spend the night with him at his home. He was very excited about this and had been looking forward to the event for some time. Finally the day arrived. The three boys were allowed to stay up later than normal, eat popcorn, and watch scary movies. They were having the time of their lives and finally fell asleep around 1:00 a.m. When Joe awoke the next morning, much to his horror he discovered that something terrible had occurred during the night. He had wet his bed. He did not want his two friends to find out about the accident, so he quickly stripped the bed and hid the sheets and blankets.

어느 금요일 밤 그가 여덟 살 때 두 친구들과 자기 집에서 그 밤을 보내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로 흥분해서 한동안 그 일을 기대하고 지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세 아이들이 평소보다 늦게 머무는 것이 허락되었고 팝콘을 먹고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게 허락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삶의 시간을 가졌고 새벽 1시경에 마침내 잠이 들었다. 죠우가 그 다음 아침 깼을 때 겁에 질릴 만큼 끔찍한 일이 밤 동안에 일어났다. 오줌을 싼 것이었다. 두 친구들이 그것을 아는 것을 원치 않아서 재빨리 침대를 벗겨내고 시트와 담요들을 숨겼다.

 

However, Joe’s mother found the bedding and discovered what had happened. She promptly let Joe’s father know. He decided that an appropriate time to discipline Joe would be at the breakfast table in front of his friends and the rest of the family. Not only did Joe’s father expose what had happened, but also he then began to ridicule Joe in front of the others. He called him a “bed wetter” and told him they would have to buy him a big diaper to wear. Joe’s dad let him know how disappointing it was for him to have an eight-year-old son who still wet the bed. After deriding his son, Joe’s father pulled down Joe’s pants, bent him over his knee, and gave him a lengthy, bare-bottom spanking right there at the breakfast table in front of his two friends. 

어쨌든 죠우의 엄마가 그것을 알았다. 엄마가 즉각 아버지에게 알렸다. 아버지는 죠우를 훈련할 적합한 때가 아침 식탁에서 친구들과 나머지 가족들이 아침을 먹을 때라고 결심했다. 그 아버지는 일어난 일을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조롱까지 했다. 아버지는 죠우를 “침대 적시는 놈” (a bed wetter)이라고 불렀고 그들이 큰 기저귀를 사서 입혀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 아버지는 여덟살 나이에 침대를 적시는 것이 얼마나 낙심시키는 것인지를 그에게 알게 했다. 그 아들을 조롱한 후에 죠우의 아버지는 죠우의 팬티를 벗기고 그의 무릎 위에 몸을 구부리게 하고 그 두 친구들이 보는 앞에, 식탁 바로 거기서 한참동안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After such humiliation, Joe said he just wanted to sink through the floor and disappear. At that moment he wished he could have killed his dad, and if he had a means to do so, he probably would have. “But it doesn’t bother me anymore, and I haven’t even remembered that experience for over thirty years,” Joe told us.

이런 모멸 후에 죠우는 마루 밑으로 가라앉아 사라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일 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렇게 할 수단이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고 나는 30년이 넘는 동안 그 경험을 기억조차 아니했어요.”

 

Realizing that Joe probably had some unresolved emotional wounding bottled up inside, I asked if Joe would speak out in prayer to Jesus how he felt while his father was ridiculing and humiliating him in front of his friends that morning many years ago. He agreed to do so. We bowed our heads and closed our eyes to pray, and I waited for Joe to begin speaking to the Lord in prayer. But after about ninety seconds he still had not said anything. I thought that perhaps Joe did not understand that he was to pray aloud, so I invited him again, saying , “Go ahead and just speak out to the Lord how you felt that morning.”

아마 죠우가 내면에 억눌러 놓은 어떤 미해결의 정서적 상처를 가졌을 거라고 깨달아져서 나는 죠우에게 요청했다. 여러 해 전 아침에 그의 친구들 앞에서 그 아버지가 그를 조롱하고 비하하고 있을 때 그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기도로 예수님께 말로 풀어놓을 수 있는가를.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는 기도하려고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죠우가 기도로 주님께 말하기를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대략 90초 후에도 그는 여전히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죠우가 크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같이 말하면서 다시 기도하게 했다. “자 기도하세요. 그저 그 아침에 어떻게 느꼈는지를 주님께 말을 꺼내세요.”

 

Suddenly Joe burst into tears, and thirty years of stored-up hurt, resentment, and anger came flowing out over the next fifteen minutes. He wept and wept and wept as the covered-over wound was finally lanced. I was then able to show Joe how Satan had used his father unwittingly to impart hi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to Joe when he was a small boy. Satan’s message was: “You are nothing but a bed-wetter. There is just something inherently wrong with you. No matter how hard you try, you will never succeed at anything in life. You are a shame to your family and an embarrassment to God.”

갑자기 죠우가 울음을 터뜨렸고 30년간 쌓인 상처와 분개와 분노가 그 다음 15분이 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울고 또 울었다. 마치 딱지가 덮힌 상처가 마침내 찔러 열어놓은 것처럼. 나는 그때 죠우에게 그의 어린 소년 시절에 사탄이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사탄의 메시지를 그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아들에게 전달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 사탄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너는 오줌싸개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너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잘못된 무언가가 있어. 네가 아무리 애써도 너는 인생에서 어떤 것에도 성공하지 못할 거야. 너는 가정에 수치이고 하나님께 당황스런 존재야.”

 

 Joe later admitted that this really was how he had felt deep inside all this adult life. He had always believed the deck was stacked against him, and that no matter what he did, circumstances beyond his control always  caused him to fail.  This would create great frustration and anger that, when he acted upon, would further embarrass and shame him.

죠우는 이후에 이것이야말로 그가 성인의 삶을 살아오면서 내면에 깊이 느꼈던 바라고 시인했다. 그는 항상 카드의 패가 불리하게 조작되었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가 조종할 수 없는 환경들이 항상 그로 실패하게 했다고 믿고 지냈다. 이것은 큰 좌절과 분노를 만들어내곤 했고 그가 그에 따라 행동할 때 그것들은 더 크게 그를 당황케 하고 부끄럽게 하곤 했다.
   
 

After releasing all that infectious emotional puss from the inner wound, Joe was then able to forgive his father from his heart and afterward go to God, his heavenly Father, and ask Him to reveal the truth of who Joe really was and why he was here. All Joe’s life the Lord had wanted to impart Hi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but the devil’s message was already strongly established deep inside.

Until that moment Joe could never receive God’s opinion of him. As a result, even though Joe was nearly forty years old, in the emotional realm he was still a fearful, insecure eight-year-old boy.

내면으로부터의 그 모든 전염병적인 정서적 찌꺼기를 내어보낸 후 죠우는 마음으로부터 그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고 나중에 그의 하늘 아버지께로 가서 죠우가 참으로 누구이며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 두 가지 진실을 보여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 죠우의 평생에 주님은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그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원하셨으나 마귀의 메시지가 이미 내면 깊숙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순간까지 죠우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결과 그가 거의 40세의 나이이더라도 정서적 영역에서 그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불안전한 여덟살 아이었다.

 

 Finally, that day the cork was popped, and all the hurt and anger of the humiliated eight-year-old boy inside Joe was released. For the first time he was able to receive God’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and be the man God created him to be without feeling like a bed-wetter. Joe’s entire life was changed that day. He later said it was like he had lived his entire life in black and white, and that day he discovered a whole new world of color.

마침내 코르크 마개가 펑 터진 날 죠우의 마음 안에서 여덟살 소년의모든 상처와 모욕을 당한 분노가 방출되었다. 처음으로 그는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오줌싸개처럼 느끼는 것 없이 하나님이 그를 그답게 창조하신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죠우의 전체 삶이 그날 변해졌다. 그는 나중에 말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온 생애가 흑과 백 안에서 살아온 것 같았고 그 날 그는 전체적인 색갈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고. (Joe’s entire life was changed that day. He later said it was like he had lived his entire life in black and white, and that day he discovered a whole new world of color.)

 

 It is easy to see how Satan used Joe’s father to impart hi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Joe’s dad had no idea the impact that experience would have on his son’s life for years to come; he was simply attempting to discipline his son. Joe’s dad had no understanding of blessing and cursing or of God’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versus Satan’s. Consequently he unintentionally delivered a message that created an inner image deep in Joe’s heart that caused him to spend years of his adult life trying to overcome feelings of worthlessness and failure.

죠우의 아버지가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사탄의 메시지를 주도록 사탄이 그를 사용한 것을 아는 것은 쉽다. 죠우의 아버지는 그 경혐이 그 아들의 미래의 삶에 끼칠 충격을 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저 그의 아들을 훈련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죠우의 아버지는 축복과 저주, 혹은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와 사탄의 메시지에 대한 이해를 가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의도하지 않은 채 죠우의 가슴 깊숙이 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메시지를 배달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무가치와 실패의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면서 그의 성인 때의 수 년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The Bible tells us, “My people are destroyed for lack of knowledge” (Hosea 4:6). Joe’s father did not intentionally wound his son; he simply did not know to send his son God’s message rather than Satan’s. Without realizing it, Joe’s father had cursed his son instead of blessing him.

성경은 말한다.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 때문에 멸망당하고 있다” (호 4:6). 죠우의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그 아들을 상처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사탄의 메시지보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아들에게 보내기를 알지 못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죠우의 아버지는 그를 축복하는 대신에 그 아들을 저주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축복의 능력 
                   The Power of A Father’s Blessing

For many people who have never been blessed, the longing for it never goes away. A close friend shared with me a powerful example of how transformative a parent’s blessing can be – at any age. My friend Pablo was deeply saddened when his father told him that his mother, who had been living away from home for nine months, was seeking a divorce.

축복을 받아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에 대한 갈망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가까운 친구가 부모의 축복이 어느 나이에서든 얼마나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지에 대한 강력한 실례(實例)를 나와 함께 나누었다. 내 친구 파블로는 (Pablo)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9개월 동안 가정에서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그의 엄마가 이혼을 구하고 있다고 것을 말했을 때 아주 슬퍼졌다.

 

As Pablo pondered what he might do or pray to help his parents, a very strange thought came to him. He had recently experienced  a powerful  change  in the life of his twenty-one-
year old son, Jose, who had been quite directionless and indecisive. Jose could not decide if he wanted to enroll in Bible school, university, or get a job. Consequently he was sitting at home doing nothing. Pablo told me that when he looked into his twenty-one-year-old son’s eyes, he saw a scared little boy who didn’t know what to do and was afraid to make a decision.

파블로가 그의 부모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하거나 기도할지를 깊이 생각할 때 아주 기이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최근 그의 21세 된 아들의 삶 속에서 일어난 강력한 변화를 경험했다. 그 아들은 호세 (Jose)인데 아주 방향성이 없고 단호함이 없이 지내는 아들이었다. 호세는 자기가 성경학교, 대학교 등록하기를 원하는지, 혹은 취직하기를 원하는지를 결정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집에 앉아있었다. 파블로는 내게 말했다. 그가 21살 먹은 그 아들의 눈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는 무엇을 할지를 모르고 결정을 내리기를 두려워하는 겁먹은 작은 소년을 보았다고.

 

About that time Pablo and his wife attended an Ancient Paths Experience and realized the likely reason their son was directionless was that he had never been blessed by his father and released into his adult identity. Consequently, spiritually and emotionally he was still tied to his mother as a little boy.

그 무렵 파블로와 그의 아내는 옛길 경험 컨퍼런스에 (Ancient Paths Experience) 참석했고 그의 아들이 방향성이 없는 이유가 그 아비에게 축복을 받은 적이 없고 그 아들의 성인(成人) 정체성 안으로 그 축복이 방출된 적이 없는 것이 그 이유일 거라고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그 아들은 여전히 한 작은 소년으로서 그 엄마에게 매여 있었다.

 

After attending the Ancient Paths event, Pablo and his wife arranged a blessing ceremony for their son. Pablo told me that immediately after the ceremony, when he looked into his son’s eyes, for the first time he saw a confident, twenty-one-year-old man looking back at him rather than a scared little boy. The spiritual and emotional umbilical cord tying Jose to his mother had literally been cut, and shortly after that, he enrolled in college and began to pursue a career to which he was certain God had called him.

그 컨퍼런스를 참석한 후 파블로와 그의 아내는 자기들의 아들을 위해 축복의 예식을 준비했다. 파블로는 내게 말했다. 그 예식 후 즉각 그가 아들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처음으로 겁먹은 작은 소년이라기보다는 확신에 찬 21세 먹은 사람이 그 아비를 되돌아보는 사람을 보았다고. 호세를 그의 어머니에게 연결시키는 영적이고 정서적인 탯줄이 글자 그대로 끊겼다. 그리고 바로 그 후에 그는 대학에 등록했고 하나님이 그를 그것에 부르셨다고 확신하는 경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Now upon receiving news of his parents’ impending divorce, Pablo had a very large thought come to mind. Perhaps the deep need in his own father’s heart was to be blessed by his father. Pablo remembered looking into his sixty-four-year-old father’s eyes and seeing the same scared little boy look he had seen in his twenty-one-year-old son.

He suddenly realized that his father, Luis, had never been blessed by his own father and at age sixty-four was still emotionally tied as a little boy to his mother. The reason Luis had struggled in his relationship with his wife was that he had never emotionally left “father and mother” so he could properly “cleave unto his wife” (Gen. 2:24, KJV).

그의 부모의 임박한 이혼의 소식을 이제 받았을 때 파블로는 아주 큰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의 아버지의 가슴 속에서 깊은 필요성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축복을 받는 것이었으리라. 파블로는 64세 먹은 자기 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본 것을 기억했고 자기 아들 21세의 호세 안에서 본 적이 있는 동일한 겁먹은 소년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그의 아버지 루이스 (Luis)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할아버지) 결코 축복을 받은 적이 없고 64세의 나이에 여전히 정서적으로 작은 소년으로서 그의 어머니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루이스가 그의 아내와의 관계에서 투쟁한 이유는 그가 결코 정서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적합하게 “그의 아내에게 딱 붙어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창 2:24).

 

Armed with this understanding, Pablo called his eighty-seven-year old grandfather, who was still living in the country of their family’s origin. Grandpa was quite shocked when Pablo tried to explain his request that on Luis’ sixty-fifth birthday he impart his blessing to his son and release him to be a man. Grandpa exclaimed, “You want me to do what? My son is having his sixty-fifth birthday celebration. If he is not a man yet, he never will be.” However, Pablo was insistent, and Grandpa finally agreed to come.

이런 이해로 무장이 되자 파블로는 그의 87세 먹은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여전히 그들의 가정의 고향인 시골에 살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파블로가 자기 아버지 루이스의 65세 생일날에 할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에게 축복을 빌고 그가 성인이 되도록 놓아주기를 요구하는 이유를 손자가 설명하려고 했을 때 아주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외쳤다. “너는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거야? 내 아들(너의 아비)은 65세 생일 축하를 받을 예정이야. 만일 그가 아직 성인이 아니라면 그는 결코 미래에도 될 수 없어.” 아무튼 파블로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마침내 오기로 동의했다.

 

Upon Grandpa’s arrival, Pablo explained the power of a parent’s blessing – a key that he held in his hand as a father to loose his son to prosper. Pablo further explained that Luis was still emotionally bound to his mother as a little boy, with the cry of Esau - “Bless me, even me also, O my father” (Gen.27:38) - still in his heart at age sixty-five. Grandpa still didn’t entirely understand but agreed to attempt to bless his son Luis on his birthday.

할아버지의 도착에 즈음하여 파블로는 부모의 축복의 능력을 설명했다. 그건 아비로서 그의 아들이 번성하게 풀어주는 아비의 손안에 잡은 열쇠라고. 파블로는 더 나아가서 자기 아버지 루이스가 아직 정서적으로 작은 소년으로서 에서의 울부짖음, “내게도 복을 주소서, 아버지!”라는 (창 27:38) 울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65세의 나이에도 그의 가슴에 여전히 이 울음을 갖고 있다고. 할아버지는 여전히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 루이스에게 그의 생일에 축복하기를 시도하기로 동의했다.

 

When the day of the ceremony arrived, after a time of worship Grandpa and Luis sat opposite each other. Grandpa first attempted to tell his son, “I love you,” but got out only the first couple of syllables before he broke into tears. Luis immediately became emotional as well, and all either man could do for the next ten minutes was to sit and weep. When Grandpa tried again to tell his son he loved him, they both broke into tears again.

Finally, the third time Grandpa was able to tell his son he loved him and how proud he was of him. He told Luis that he was a huge success because all three of his children loved the Lord and had married godly spouses, and all of Luis’ grandchildren were serving Jesus.

그 의식의 날이 왔을 때, 예배의 시간 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루이스는 서로 반대쪽에 마주 앉았다. 할아버지는 처음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시도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첫 두 마디 음절을 말하고는 울음이 터졌다. 루이스는 즉각 같은 정서가 되었고 두 사람 모두 다음 10분 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앉아서 우는 것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다시 말하려고 애를 썼을 때 그들은 모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마침내 세 번째 할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그가 그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루이스에게 그가 대성공을 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자녀들 셋이 모두 주님을 사랑하고 경건한 배우자들과 결혼했고 루이스의 모든 손자, 손녀들이 다 주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Then Grandpa asked, “Son, do you remember when you were fifteen years old?” When his father asked this question, Lus suddenly began to release a huge surge of emotional pain. Yes, Luis remembered when he was fifteen years old. What no one else knew was that Luis and his father had a huge argument that became physical. That day Luis’ father had screamed horrible things at his son. He told Luis that he was worthless and physically threw him out of the house. He told him he hated him and hoped he would never see this worthless son again.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물었다. “아들아, 너는 네가 열 다섯 살 때를 기억하니?” 루이스는 갑자기 정서적 고통의 거대한 물결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루이스는 그때를 기억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은 루이스와 그의 아버지가 큰 논쟁을 벌였고 몸 싸움까지 나아갔다. 그날 루이스의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끔찍한 것들을 외쳐댔다. 그는 루이스에게 가치없는 놈이라고 말하고 그를 집 밖으로 내 던졌다. 그는 아들에게 미워한다고 말했고 그가 이 가치 없는 아들을 다시 보지 않겠다고 말했다.

 

Luis, of course, had become equally angry and said horrible things to his father also. He told his father that he hated him as well and would never see him again. He left the house in rebellion at age fifteen to begin his adult life. Obviously this was not the blessing Luis needed to be released into his adullt identity.

루이스는 물론 똑같이 화가 났고 그 아버지에게 험한 말들을 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에게 그가 역시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말하고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 다섯 살에 반역하여 집을 떠났고 그의 성인의 삶을 시작했다. 분명코 이것은 루이스가 그의 성인 정체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필요한 복이 아니었다.

 

Luis and his father had since reconciled, but in fifty years they had never spoken of the event. When Luis’ father brought it up, his words stirred up fifty years of bitterness, hatred, resentment, and anger that had been in Luis’ heart. Years ago he had said he forgave his father, but his heart had never released the pain, and he had neither truly forgiven his father nor repented of the bitterness, dishonor, and rebellion that had been in his heart toward his dad.

루이스와 그의 아버지는 그 후 화해했으나 50년간 그들은 그 사건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고 지냈다. 루이스의 아버지가 그것을 끄집어냈을 때 그의 말들은 루이스의 마음 안에 있었던 비통과 증오와 분개와 분노를 흔들어놓았다. 여러 해 전에 그는 그의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말했으나 그의 마음은 결코 그 고통을 놓아주지 못했고 그는 참으로 그의 아버지를 용서하지도 않았고 그 아버지를 향한 그 비통과 불경과 반역을 회개한 적도 없었다. 

 

Now fifty years later, when his father lanced the infectious wound, Luis burst into profuse sobbing. Luis buried his face in his father’s chest as his father also sobbed profusely. When Grandpa’s sobs had subsided enough for him to speak, he whispered to Luis, “Son, I’m sorry. I was wrong that day. Please forgive me. I got angry, said things I didn’t mean, and cursed you instead of blessed you. Please forgive me. I love you!” Those words only intensified his son’s sobbing.

이제 50년 후에 그의 아버지가 감염된 상처를 찔렀을 때 루이스는 한없는 울먹임을 떠뜨렸다. 루이스는 그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고 아버지도 한없이 울먹였다. 할아버지의 울음이 잦아들어서 말할 수 있을 때 그는 루이스에게 속삭였다. “아들아, 미안하다. 그날 내가 잘못했어. 나를 부디 용서해라. 나는 화가 났고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들을 말했다. 그리고 너를 축복하는 대신에 저주했다. 나를 용서해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말들은 그의 아들의 울먹임을 더 심하게 했을 뿐이다.

 

When Luis finally stopped weeping, his dad looked into his eyes and said, “Son, I love you. I was wrong. Will you forgive me for the words I said and the way I treated you growing up in general and specifically on the day you left home?” Luis replied, “Yes, Papa, I forgive you. I love you. I also was wrong in my attitude and the words I spoke. Will you forgive me?”

루이스가 마침내 울음을 멈추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말했다.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말한 것 용서하고 네가 성장할 때 일반적으로 너를 취급한 방식, 특히 집을 떠나는 날에 너를 취급한 방식을 용서하겠니?” 루이스는 대답했다. “예,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나 또한 내 태도와 내가 한 말이 잘못됐어요. 저를 용서하시겠어요?”

 

Grandpa responded, “Yes, of course. I love you, son. And today I pronounce over you the words I should have spoken fifty years ago. Son, I’m proud of you. You are not a foolish little boy. You are a man. Today I bless you. I cut you loose emotionally and spiritually from your mother, and I give you my blessing and release you into your adult identity as a man. Go and be and do all God has called you to.”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그럼, 물론이고.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네게 50년 전에 했어야만 하는 말들을 네게 말한다. 아들아,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너는 어리석은 소년이 아니야. 오늘 나는 너를 축복한다. 나는 너를 네 엄마에게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풀어 놓는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내 축복을 주고 너를 한 남자로서 너의 성인 정체성 안으로 너를 놓아준다. 가서 하나님께서 너보고 하라고 부르신 존재가 되고 그 일을 모두 해라.”

 

As Pablo shared this story with me, he related that something supernatural had happened in the heart of his father, Luis, the day he received his father’s blessing. Pablo said after the blessing ceremony, when he looked into his father’s eyes, he saw a bold, confident sixty-five-year-old man who was at peace. No longer was Luis that frightened little boy, and it showed.

파블로가 이 이야기를 나와 나누었을 때 그는 무언가 초자연적인 것이 그날 그가 그의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그날에 아버지 루이스의 마음 안에서 일어났다고 언급했다. 파블로는 그 축복 의식 후에 그가 아버지의 눈을 들여다 보았을 때 담대하고 확신에 차 있는 65세의 사람, 평안이 있는 사람을 보았다고 내게 말했다.

 

The supernatural healing that took place in Luis’ heart that day was so profound that two weeks later Pablo’s mother cancelled her plans for divorce and moved back home. She said, “I don’t know what happened to my husband, but finally I got the man I thought I married. For the last forty-five years I have been trying to follow an angry little boy who didn’t know where he was going and who frequently blamed me for his own failures and frustrations. Somehow the fear, anger, frustration, and blame are now all gone. This is the man I fell in love with forty-five years ago. I don’t want to divorce him. I love him and want to live the rest of my life with him.”

루이스의 마음 안에 그날 일어난 초자연적인 치유는 너무 심오해서 두 주간 후에 파블로의 엄마가 이혼하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엄마가 말했다. “내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모르지만 마침내 나는 내가 결혼하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을 되찾은 거야. 지난 45년 동안 나는 그가 가고 있는 곳을 모르고 지냈고 자주 그 자신의 실패들과 좌절들을 인하여 나를 꾸짖는 성난 작은 소년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면서 지냈다. 아무튼 그 공포, 분노, 좌절(불만) 그리고 꾸짖음이 이제는 다 가버렸다. 이 사람은 내가 45년 전에 사랑에 빠졌던 그 남자이다. 나는 그와 이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내 생의 나머지를 그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

 

Luis and his wife spent the next several months sharing a new honeymoon. They spent many more years prospering in business and devoting much of their time to helping other couples in their city. Luis later told Pablo, “I had no idea that my heart had been longing for the blessing of my father for over fifty years. I knew it would be good to see my father, but I had no idea that his blessing would be such a key to change my image and experience of myself and of life.”

루이스와 그의 아내는 그 다음 수 개월을 새로운 신혼여행을 나누면서 보냈다. 그들은 사업에 번창하면서 더 많은 해들을 보냈고 그들의 시간의 많은 것을 그 도시에 있는 부부들을 돕는데 헌신하고 있다. 루이스는 나중에 아들 파블로에게 말했다. “내 마음이 50년 이상 내 아버지의 축복을 갈망하면서 지내왔다는 것을 나는 생각 못 했어. 나는 내 아버지를 보는 것은 좋을 거라고 알았으나 그의 축복이 내 자신과 내 삶의 이미지를 바꾸는 이런 열쇠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Pablo also spoke to his grandpa after a blessing ceremony. Grandpa told him, “If I had known that my blessing as a father was the key that would unlock future prosperity for my son, I would have used it many decades ago. I only regret that I made this discovery so late in my son’s life and that it took my grandson to motivate me to do what I should have done decades ago.”

파블로는 또한 축복 의식 후에 그의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말했다. “만일 내가 아버지로서의 내 축복이 내 아들을 위한 미래의 번영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수 십년 전에 그것을 사용했을 거야.”

 

We see in this story the power of a parent’s blessing. Without realizing it, Luis had been waiting all his adult life to receive his father’s blessing. Not having this blessing had negatively impacted his marriage as well as his sense of personal value and purpose. The two primary reasons Luis’ father never blessed him are the same reasons many of us don’t bless our sons and daughters. The first reason is lack of knowledge. No one ever taught us the power of a parent’s blessing to either release our children into future prosperity or hinder it.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부모의 축복의 능력을 본다. 그것을 깨달음이 없이 루이스는 그의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성인 생활 내내 기다려왔다. 이 축복을 갖지 않음은 그의 개인적 가치와 목적의 감각은 물론이고 그의 결혼 생활에 부정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루이스의 아버지가 그 아들을 축복하지 않은 두 가지 주요한 이유들은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을 축복하지 않는 이유들과 동일하다. 첫째 이유는 지식의 부족이다. 아무도 우리의 자녀들을 미래 번영으로 놓아주기 위해서든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서든 부모의 축복의 능력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The second is lack of experience. It is very difficult to give something we have never received. If our own parents did not know about or experience blessing while they were growing up, they were neither able to bless us at critical times in life nor rear us in a culture and lifestyle of blessing. As a consequence, it is very difficult for many of us who are now parents to impart blessing to our children. Like Luis, we as adult children are crying out as Esau did, “Bless me, even me also, O my father.” You can change this pattern and leave a new legacy for future generations by creating a family culture of blessing.

둘째 이유는 경험의 부족이다. 우리가 받아본 적이 없는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  만일 우리의 부모들이 자녀들이 성장하는 동안에 축복에 대해서 알지 못했든지 혹은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들은 삶의 중요한 시기들에 우리를 축복할 수도 없었고 축복의 문화와 생활 스타일에서
기를 수도 없었다. 결과로서 지금은 부모들인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축복을 나누어주기가 어렵다. 루이스처럼 우리는 성인 자녀들로서 에서가 그랬던 것처럼 울부짖고 있다. “나를 축복하소서 나 또한 축복하소서. 오, 아버지!” 당신은 이 양식을 변경할 수 있고 축복의 가정 문화를 만들어냄으로써 미래 세대들을 위한 새로운 유산을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