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Introduction)
Now the LORD said to Abram, “Go forth from your country, and from your relatives and from your father’s house, to the land which I will show you; and I will make you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you, and make your name great; and so you shall be a blessing; and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the one who curses you I will curse, and in you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shall be blessed.” (Gen. 12:1-3).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지요. “너는 너의 나라, 너의 친척들, 네 아비의 집으로부터 내가 너에게 보일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겠고 너에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겠다. 그래서 너는 복이 될 것이고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들을 내가 저주하겠다. 지상의 모든 가정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게 하겠다.” (창 12:1-3).
God has a plan to bless every family on Planet Earth. That is stated in the promise above, which God made to Abraham the patriarch, foretelling the blessing to come through Jesus Christ, the seed of Abraham. God’s stated purpose in sending Jesus the Messiah was to bless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It is interesting that He did not say He would bless all the individuals of the earth but rather all the families. In this passage in Genesis we see that the primary unit through which God has committed Himself to work is the family. We can also be assured that if God’s plan is to bless, then Satan has an opposing plan, and that is to curse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하나님은 지구 상의 모든 가정들에게 복을 주실 계획을 갖고 계시다. 하나님이 족장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서 (위의 창세기 말씀) 그 계획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복을 예고하고 있다. 메시야 예수를 보내심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은 지상의 모든 가정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분이 모든 개인들에게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기보다는 모든 가정들에게 복을 내리시겠다는 것은 흥미롭다. 하나님 자신이 그것에 온전히 충실하시겠다는 주된 단위는 가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위의 창세기 말씀에서 알게 된다. 하나님의 계획이 복을 주시는 것이라면 사탄은 반대되는 계획, 즉 지상의 모든 가정들을 저주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So what exactly is blessing and its opposite, cursing? Those terms often bring many different thoughts to mind. Blessing is frequently connected with the receipt of money or some sort of gift. Cursing is oftentimes associated with witchcraft, or someone casting a spell or putting a “curse” on another. Other times we think of cursing as someone using profane or obscene language. While blessing and cursing can certainly mean those things, in this book we are talking about something very simple. Throughout the course of this book we will use the following definitions of these words:
그러면 복을 내림은 정확히 무엇이고 그 반대는 저주를 내림은 무엇인가? 복은 자주 돈이나 혹은 어떤 종류의 선물을 받는 것과 연관된다. 저주는 자주 마술과 연관된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 위에 주문(呪文)을 던지거나 “저주”를 놓는 것과 관련된다. 또 어떤 경우에 우리들은 저주란 것을 불경하고 외설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아주 단순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복과 저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정의들을 내리고 진행할 것이다.
Blessing: God using a human to impart His message and image of identity and destiny to the heart of
another person.
Cursing: Satan using a human to impart his message and image of identity and destiny to the heart of
another person.
복 : 하나님은 그의 메시지와 정체성과 사명의 이미지를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하기 위하여 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을
복이라 한다.
저주 : 사탄은 그의 메시지와 정체성과 사명의 이미지를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을
저주라 한다.
God and Satan both have a message they desire to impart into the heart of every person on earth. However, these two messages are totally opposite to each other. While God’s message conveys love, value, respect, and purpose, Satan’s message conveys shame, a lack of love, and a lack of purpose. At any moment in time parents can be agents of God to bless their children or agents of Satan to curse their children. Parents can impart either God’s message - “I love you; you are precious, valuable, and worthy of my time and energy” - or Satan’s message - “You are unlovable, unwanted, and not worthy of my time or energy.”
하나님과 사탄 모두가 다 지상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하기를 원하는 메시지를 갖고 있다. 아무튼 이 두 가지 메시지들은 전체적으로 정반대이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사랑, 가치, 존경, 목적을 전달하는 반면에 사탄의 메시지는 수치, 사랑의 결여(缺如), 목적의 결여를 전달한다. 어떤 순간에든지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축복하는 하나니미의 대리자들이 될 수 있거나 혹은 자기 자녀들을 저주하는 사탄의 대리자들이 될 수 있다. 부모들은 하나님의 메시지 중의 어떤 것을 전달할 수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고귀하고 가치있고 내가 시간과 정력을 쏟을 가치가 있어. (I love you; you are precious, valuable, and worthy of my time and energy.) 반면에 사탄의 메시지는 “너는 사랑스럽지 않아, 우리가 원한 게 아니야, 너는 시간과 정력을 쏟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You are unlovable, unwanted, and not worthy of my time or energy.)
In Hebrew, the phrase “to bless” is the word barak. The literal translation of this word is “to kneel before someone.” So blessing comes from an attitude and posture of humility. When most people think of blessing, they usually think of someone standing over another person and blessing him from a superior position. However, Jesus blessed us by humbling Himself and taking human form. From the posture of a despised criminal, He gave his life to pay for our sin. This is the ultimate image of blessing from a kneeling posture.
히브리어에서 “축복하다”란 단어는 바락 (barak)이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누구 앞에 무릎을 꿇다” (to kneel before someone) 이다. 그러므로 복은 겸손의 태도와 자세로부터 온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들은 보통 다른 사람 위에 서서 더 높은 위치에서 축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튼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심과 인간적 형상을 입으심으로 우리를 축복하셨다. 멸시받는 죄인의 자세로부터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위한 값을 지불하시기 위하여 그의 생명을 주셨다. 이것은 무릎을 꿇는 자세로부터 나오는 최상의 축복의 이미지인 것이다.
While the literal meaning of barak is “to kneel before,” the primary spiritual connotation is “to empower to prosper.” So when you bless someone, you kneel before him in humility and literally empower that person to prosper. Of course, this word prosper is not limited to financial prosperity. If you bless your daughter, you empower her to prosper in every area of her life: her spiritual life with God, her physical health, her emotional well-being, her marriage, her children, her finances, her career, and her ministry. To curse is to do the opposite. If you curse your daughter, you likewise cripple, disable, or disempower her from prospering in all of these areas of life.
바락의 문자적 의미가 “~앞에 무릎을 꿇다”인 반면에 주된 영적인 함축된 의미는 “번성하게 힘을 주다”이다. (to empower to prosper). 그러므로 당신이 누군가를 축복할 때 당신은 겸손하게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사람이 번성하게 글자 그대로 힘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 번성한다는 단어가 경제적인 번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당신 딸을 축복한다면 당신은 그 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번성하게 힘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삶, 딸의 건강, 그녀의 정서적 안녕, 그녀의 결혼, 그녀의 자녀들, 그녀의 경제, 그녀의 경력, 그녀의 봉사 등등. 저주한다는 것은 그 반대이다. 당신이 딸을 저주한다면 그녀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딸이 번성하는 것으로부터 손상을 입고, 무능해지고, 힘을 잃게 하는 것이다.
In the Greek, the verb “to bless” is the word eulogeo. The literal meaning of this word is “to speak well of.” This word also means to cause to prosper. Perhaps you have already picked up on its similarity to the English word eulogy, which comes from this same root. A eulogy, of course, also means to speak well of, but it is usually given at a funeral. Obviously words spoken at a funeral will not empower the deceased person to prosper. In order to empower someone to prosper, a blessing must be spoken while that person is living and can receive the blessing. So to curse is to speak evil of someone, or to speak Satan’s vision or image into someone’s life, while to bless is to speak well of someone, or to impart God’s vision and image into a person’s life.
헬라어에서 “축복한다”는 동사는 “율로게오” (eulogeo)이다. 문자적 의미는 “~를 칭찬하다”이다. 이것은 또한 번성하게 만든다는 뜻이 있다. 영어의 “율로지” (eulogy: 찬사, 칭송, 찬양하는 연설, 글)가 이 단어에서 나왔다. 칭송은 물론 칭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장례식에서 하는 말이다. 장례식에서 하는 칭송, 칭찬이 죽은 자를 번성하게 힘을 주지는 못하지만. 누가 번성하게 힘을 주기 위해서 그 사람이 살아있고 복을 받을 수 있게 축복의 말이 언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저주는 누군가를 욕하고 그 사람의 삶 속으로 사탄의 비젼과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 축복은 누군가를 칭찬하고 그 사람의 삶 속으로 하나님의 비젼과 이미지를 주는 것이다.
영양분이 풍부한 물인가 아니면 염산(鹽酸)인가
Nutrient Water or Hydrochloric Acid
화분에 영양분이 있는 물을 주는 것과 염산을 뿌려주는 것은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영양분을 받은 화초는 잘 자라고 꽃을 피울테지만 염산을 받은 화분은 곧 죽을 것이다.
This example paints a good picture of the power of blessing and cursing. Parents with their words, attitudes, and actions possess the ability to bless or curse the identities of their children. Blessing is like pouring blue, nutrient-rich water over the child’s inner being, while cursing is like pouring hydrochloric acid ove the child. One empowers the child to prosper; the other cripples and disables. Blessing imparts God’s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while cursing imparts Satan’s message of the same.
이것은 축복과 저주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들은 그들의 말과 태도와 행동으로 그들의 자녀들의 정체성을 축복하기도 저주하기도 하는 능력을 갖는다. 축복은 영양가 있는 물을 자녀의 내부에다 부어주는 것과 같다. 반면에 저주는 자녀 위에 염산을 부어주는 것 같다. 전자는 아이가 번성하게 힘을 주고 후자는 자녀를 손상시키고 무능하게 한다. 축복은 하나님의 자아정체성과 사명을 메시지를 전달하는 반면에 저주는 자기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사탄의 메시지를 준다.
예수님조차도 그의 아버지의 복을 필요로 했다
Even Jesus Needed His Father’s Blessing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blessing of a father is so important that Jesus Christ Himself did not perform one miracle or preach one message until after He had publicly received the blessing of God His Father. In the Gospel of Luke we read:
아버지의 축복은 그렇게 중요해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복을 공적으로 받은 후까지 한 개의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고 한 개의 메시지도 설교하지 않으셨다. 누가복음 3장 22절에서 우리는 읽게 된다.
And the Holy Spirit descended upon Him in bodily from like a dove, and a voice came out of heaven, “You are My beloved Son, in You I am well-pleased.” (Luke 3:22)
그리고 성령님이 비둘기 같은 형제로 그 위에 내려오셨고 한 음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아주 기뻐한다.”
Today the phrase the Father spoke over Jesus is not something we typically hear fathers declare to their children. But I am told that the Jews of that time were used to hearing fathers say,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I’ve been told that it was common for Jewish fathers to speak those words over their sons when releasing them into their adult life and calling. Thus anyone who had ever attended such a Hebrew rite of passage ceremony would have been familiar with the words God the Father declared over Jesus.
하나님이 예수께 말씀하신 그 귀절은 오늘날 우리가 전형적으로 듣는 아버지들이 그 자녀들에게 선포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는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비들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그를 아주 기뻐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데 익숙했다고 한다. 내가 들어온 바 유대인 아비들이 자녀들을 성인의 삶과 사명으로 내어보낼 때 자기 아들들에게 이 말들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유대인의 의식의 규례에 참석한 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위에 선포하신 그 말씀들에 익숙했었다고 한다.
The only person over whom this phrase could not be spoken was a person of illegitimate or questionable birth. Because of the strange circumstances of Jesus’ birth, many people considered Him illegitimate. Futhermore, because Jesus was not Joseph’s biological son, Joseph probably did not pronounce this blessing over Jesus when He was released into adulthood.
이런 말을 들을 수 없었던 유일한 사람은 비합적이거나 의문스런 출생의 사람뿐이었다. 예수님의 출생의 기이한 환경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합법적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예수께서 요셉의 생물학적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셉은 아마도 예수께서 성인으로 진출할 때 예수에게 이 축복을 소래내어 말하지 않았을 것 같다.
In His humanity Jesus may have been tempted to feel insecure about this. Have you ever thought about what it must have been like for Jesus to be God Himself living in human form? At some point in His childhood He must have begun to recognize that He was different from all the other kids.
He was entertaining thoughts such as, “I am God. All the fullness of Deity dwells in Me in bodily form.”
그분의 겸손 안에서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서 불안하게 느끼는 유혹을 받았을지 모른다. 당신은 생각해 이것이 무엇과 같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예수께서 인간의 형상을 입고 사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예수의 아이시절의 어떤 지점에서 그분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신성의 충만이 육체의 형태로 내 안에 머물고 있다.”
With whom could He have taken counsel? Who would understand? Can you imagine going to the rabbi and saying, “Excuse me, Rabbi, but I have been thinking some very strange thoughts recently. I actually have been thinking that I am God Himself. What do you think about this?”
그분이 누구와 함께 의논을 했을까? 누가 이해했을 것인가? 당신은 랍비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여보세요, 랍비님, 나는 최근에 매우 기이한 몇 가지 생각들을 해왔습니다. 나는 실제로 내가 하나님 자신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랍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Perhaps His mother was the only person who could really understand what life might have been like for Jesus. I believe that in His humanity, Jesus was tempted with the same types of insecurities and fears we face.
아마 그의 어머니는 삶이란 예수에게 무엇과 같았을 것인가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예수께서 그의 겸손 안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동일한 형태의 불안정성들과 공포들로 유혹을 받았다고 믿는다.
Yet if anyone had any doubts about Jesus’ identity or destiny, those doubts were absolutely set to rest at the Jordan River when the Father pronounced publicly, “You are My beloved Son. In you I am well pleased.” I believe this blessing from His heavenly Father gave Jesus the strength to walk in His true identity and fulfill His destiny on earth. If Jesus needed the blessing of His Father in order to complete His destiny, how much more do our children need to receive a similar blessing from their parents?
그런데도 만일 누군가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하여 어떤 의문들을 가진다면 그 의심들은 하나님이 공적으로 선포하실 때 요단강에서 절대적으로 확정되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이다.” 내가 믿기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복이 예수께 그분의 진실한 정체성 안에서 걸을 힘과 지상에서 그의 사명을 완수할 힘을 주었다. 예수께서 그의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의 복이 필요했다면 더우기 우리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들로부터 동일한 복을 받을 필요가 있지 않은가?
축복의 문화를 회복하기
Restoring A Culture Of Blessing
Unfortunately in our modern Western culture ceremonial blessing at certain critical times in life and weekly parental blessing have been virtually eliminated in most families. When I speak at conference and in various churches, I often ask the attendees, “How many here were given a blessing ceremony or at least received a powerful impartation of blessing from you father that released you into you adult identity and destiny at or around the time of puberty?”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대 서구 문화 안에서 어떤 아주 중요한 인생의 시기들에 축복 의식과 또 매 주의 부모의 축복이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가정들에서 제거된 채 지내오고 있다. 내가 컨퍼런스와 각종 교회들에서 말할 때 나는 자주 참석자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사춘기나 사춘기 어간에 당신들을 성인의 신분 속으로 놓아주는 축복의 의식을 얼마나 가졌으며 혹은 적어도 당신들의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힘있는 수여를 받은 횟수가 얼마나 되는가?”
I asked this very question just recently at a church conference with around two hundred people in attendance. In that group only two individuals raised their hands to say a father had blessed them at the time of puberty.
나는 최근에 이 질문을 대략 200명이 참석한 교회 컨퍼런스에서 물었는데 단 두 사람만이 손을 들고 아버지가 자기들을 사춘기에 축복했다고 말했다.
In many groups I continue my line of questioning by asking, “How many here received a blessing from either your father, mother, or both on a weekly basis?” Again, those who answer affirmatively are even fewer in number than those who received a blessing in some sort of rite of passage ceremony around the time of puberty. Furthermore, those who respond affirmatively generally are not from a traditional Western culture.
많은 그룹들에서 나는 이같은 질문을 계속 했다. “여기 있는 분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주간 당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양친에게서 축복을 받았는가?” 긍정적으로 대답한 이들이 사춘기 어간에 어떤 종류의 통과 의식에서 복을 받은 자들보다 수에 있어서 훨씬 적었다. 더욱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한 사람들은 전통적인 서구 문화 출신들이 아니었다.
The understanding of the power of a parent’s blessing has been systematically stolen from our culture. However, in this book you will learn how to restore a culture of blessing to your family and become an ambassador of blessing to your community and those around you.
부모의 축복의 능력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문화에서 조직적으로 강탈당해왔다. 어쨌든 이 책에서 당신은 당신의 가정으로 축복의 문화를 회복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고 당신의 공동체와 당신 주변의 사람들에게 축복의 대사(大使)가 될 것이다.
As I studied the topic of blessing and cursing in the Bible, I identified six critical stages in a child’s life when he should receive a blessing from God through his parents, and a seventh time at which children are meant to bless their parents. These seven critical times are: (1) at conception, (2) in the womb, (3) at birth, (4) during infancy, (5) at puberty (in a rite of passage ceremony), (6) at the time of marriage, and (7) in older age.
내가 성경에서 축복과 저주의 주제를 공부할 때 나는 자녀가 그의 부모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만 하는 때를 아이의 삶 속에서 여섯 개의 중요한 단계를 확인했고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들을 축복하기로 되어있는 일곱 번째 단계를 확인했다. 이 일곱 개의 중요한 때는:
(1) 잉태기 (수태기) (2) 태중의 때 (임신 중) (3) 출생 때 (4) 유아기 (5) 사춘기 (통과 의식의 의식) (6) 결혼의 때 (7) 노년의 나이 때이다.
It would have been virtually impossible for someone growing up in the ancient Hebrew culture to miss out on being blessed at these critical times. The culture was structured in such a way that both ceremonial and day-to-day blessing occurred naturally in most families. This resulted in spiritual, emotional, physical, relational, and financial health for families who practiced the blessing regularly. In the following chapters you will learn how to restore an overall culture of blessing to your own family and how to impart a meaningful blessing to your children every week.
고대 히브리 문화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 이 중요한 시기들에 복받기를 놓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문화는 이런 방식으로 구축되어서 의식적인 축복이나 매일매일의 축복은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가정들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그 축복을 규칙적으로 시행하는 가정들을 위해서 영적, 정서적, 육체적, 관계적 또 경제적 건강을 초래했다. 다음 장들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의 가정으로 축복의 전반적인 복을 회복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고 매주 당신 자녀들에게 의미있는 축복을 주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As you read through this book, you will hear the message in two ways: initially as an adult son or daughter, and secondly as a parent to your own children. In each chapter describing the blessing God intended at one of the seven critical times in life, we will look at the power of the blessing and also at the consequences of the lack of blessing or of cursing.
당신이 이 책을 쭉 읽어나갈 때 당신은 두 가지 방식으로 메시지를 들을 것이다. 원초적으로는 성인 아들이나 딸로서,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당신 자녀들에게 한 부모로서 들을 것이다. 각 장에서 하나님이 일곱 단계의 시기 중의 하나에서 의도하신 복을 묘사하면서 우리는 축복의 능력을 바라볼 것이고 또한 축복의 결여의 결과, 저주의 결과들을 바라볼 것이다.
You may find as you read that you have already missed several of the critical times of blessing in your children’s lives. Throughout the book you will learn how you as a parent can still impart the blessing to your older or adult children even if you missed doing so at the appropriate stage in life.
당신이 읽을 때 당신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축복의 중요한 시기들의 몇 가지를 이미 놓쳤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이 책을 쭉 읽으면서 당신은 당신이 부모로서 여전히 당신의 나이먹은 자녀들, 혹은 성인 자녀들에게 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비록 당신이 삶의 적합한 단계에서 그렇게 하기를 놓쳤다하더라도.
At the end of chapter 4 through 10 you will encounter sa section I have called the “Blessing Toolbox.” There you will find practical suggestions and prayer models you can use to break the power of curses in your own life and in the lives of your children, as well as prayers you can pray to release the blessing. You also will learn how to close spiritual doors in your family that may have been opened to the enemy and how to open spiritual doors to release God’s blessing upon yourself and your children.
4장으로부터 10장까지의 각 끝에서 당신은 내가 명명하기를 “축복의 연장통”(Blessing Toolbox) 이라고 부르는 한 부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당신은 당신 자신의 삶과 자녀들의 삶 속에서 저주의 세력을 깨버리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제안들과 기도 본보기들을 발견할 것이다. 축복을 풀어놓기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기도들뿐만 아니라. 당신은 또한 당신의 가정 안에서 원수에게 열어놓은 영적인 문들을 닫는 방법을 배울 것이고, 하나님의 복이 당신 자신과 당신 자녀들에게 방출되는 영적인 문들을 여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You may notice that I use the male pronoun “his” throughout this book when referring to children. This is for ease of reading, not because the blessing pertains only to sons.
내가 이 책 전반에서 자녀들을 언급할 때 남성 대명사 “그의” (his)를 사용하는 것을 눈여겨볼 수 있다. 이것은 읽기의 편의를 위한 것이고 축복이 아들들에게만 관계되기 때문에 그렇게 적은 것이 아니다.
There is a battle within every family over whose message of identity and destiny will be imparted – God’s or Satan’s. In this book you will learn at exactly what points in your own life and in the lives of your children the enemy has successfully imparted his message and image, and specifically how to replace that image with God’s truth. You also will learn how to intentionally bless your family daily, weekly, and at the seven criticall times of life. In so doing you will not only empower your own children to prosper, but you will also actually create a legacy of blessing for many generations to come.
모든 가정 안에 전쟁이 있는데 자아정체성과 사명에 대해서 누구의 메시지가 전달될 것인가에 대한 전쟁이다. 하나님의 메시지인가, 사탄의 메시지가 전달되는가 하는 전쟁이다. 이 책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의 삶과 자녀들의 삶 속에서 정확히 어떤 지점들에서 원수가 성공적으로 그의 메시지와 이미지를 전달했는지를 배울 것이고 특별히 사탄이 주는 메시지를 하나님의 진리로 대치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당신은 또한 의도적으로 당신 가정을 매일, 주마다,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일곱 시기에서 축복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이 번성하게 힘을 줄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의 많은 세대들을 위한 축복의 유산을 실제적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You were created to be God’s agent of blessing to your children. As you read the following chapters, you will certainly be equipped to empower your own children to fulfill their destiny in God. However, I believe that as you learn to release the power of a parent’s blessing, the Lord will also prepare you to be part of a growing army of blessed families who are encouraging others to create a culture of blessing in communities around the world!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축복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지음받았다. 당신이 다음 장들을 읽을 때 당신은 확실히 당신 자녀들이 하나님 안에서 자기들의 사명을 완수할 힘을 주기 위해 잘 갖추어질 것이다. 아무튼 나는 믿는다. 당신이 부모의 축복의 권세를 방출하기를 배울 때 주님은 또한 당신을 준비시켜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복된 가정들의 발전하는 군대의 일부가 되어서 온 세상에 있는 공동체들 속에 축복의 문화를 만들어내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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