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scripts (한글 강의록)/부모축복의 힘

제6장의 섹션(1) (The Power of a Parent's Blessing)

코필아카데미 2025. 1. 4. 08:46

Blessing Your Child at Birth

출생 시에 당신의 아이를 축복하기

 

I believe there is a party in heaven each time a child is born. Angels rejoice, and the Father looks at the new person He had made and declares something much like what He said in Genesis after each step of creation: It is very good (Gen.1:31). God was delighted in you at your birth, and He has delighted in each child born into your family.

나는 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하늘에서 잔치가 벌어진다고 믿는다. 천사들이 즐거워하고 하나님 아버지는 그가 만드신 새로 난 사람을 바라보시고 창조의 매 단계 후에 그가 말씀하신 바와 아주 같은 무언가를 선포하신다. “그것이 아주 좋다” (1:31). 하나님은 당신의 출생 때 당신 때문에 즐거워지셨고 그분은 당신의 가정 안으로 태어난 각각의 아이를 즐거워하셨다.

 

핵심 역할을 하는 선수

Key Role Player

 

Both parents play a key role in imparting a message to the heart of the child at the time of birth. God intends to us both father and mother to impart love and acceptance of the child’s personhood and gender. Yet, again, while the father is very important to impart blessing, it is primarily the mother who will anwer the key question in the child’s heart.

부모는 출생 때에 아이의 마음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된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아버지, 엄마인 우리 모두가 아이의 사람됨과 (presonhood) (gender)에 대한 사랑과 용납을 전하도록 뜻을 가지고 계시다. 아버지가 축복을 전달하기 위하여 중요한 반면 아이의 마음 안에 있는 주요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주로 어머니이다.

 

답이 되어야 할 주요 질문

Key Question To Be Answered

 

The key questions that either God or Satan will answer through the agency of parents are: 

 Am I what you expected and wanted?

 Am I OK, or is something wrong with me?

 Will anyone take care of me?

부모라는 대리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대답을 하시든 사탄이 대답을 하든지간에 주요 질문들은:

나는 당신이 기대하고 원한 바인가?

나는 괜챦은가, 내게 무슨 잘못된 것이 있나?

어떤 사람이 나를 돌볼 것인가?

 

Probably none of us can remember being born, but I’m sure it must be a very scary experience for a baby. Moving from the warm, protected environment in the womb, where all the child’s needs are met, to a cold, noisy, unprotected environment could be very terrifying.

That‘s why the immediate question in the heart of the child would be, “Who will take care of me?”

아마도 우리 중 누구도 태어난 것을 기억할 수 없으나 내가 확신하기는 그것은 아이에게는 아주 겁나는 경험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의 필요가 해결받는 따뜻하고 보호받는 모태 안의 환경으로부터 춥고, 시끄럽고, 보호되지 않는 환경으로 옮기는 것은 아주 공포스러울 수 있었다. 그것이 아이의 마음 안에 있는 즉각적인 질문이 이렇게 되곤 하는 이유이다.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

 

No one ever brought a baby home from the hospital and said, “Welcome to your new home. Here is your room. The bathroom is just down the hall. Farther down is the kitchen. Help yourself to anything you want. We’re so glad you’re here. Make yourself at home.” A baby is completely helpless. He cannot meet any of his own needs, and without help he will die. So once the birth has taken place, that newborn needs to know whether his needs will continue to be met even though he is no longer protected and automatically cared for as he was in the womb.

아무도 아기를 병원으로부터 집을 데려와서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의 새 집으로 환영. 여기가 너의 방이야. 욕실은 홀 바로 아래에 있어. 더 아래 쪽에 부엌이 있다.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네 멋대로 써라. 우리는 네가 여기 있어서 너무 기쁘다. 편안히 쉬어.” 아기는 완전히 속수무책이다. 그는 스스로 자기의 필요를 채울 수 없다. 그리고 도움이 없으면 그는 죽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출생이 일어났으면 그 신생아는 그의 필요들이 모태 속에서처럼 그가 더 이상 보호되지 않고 자동적으로 돌봄을 받지 않더라도 계속하여 채워질 것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Of course, the devil would like to tell the child, “You are all alone now without anyone who loves you or cares for you. There is something wrong with you, and consequently no one wants you, and no one will take care of you. You must fend for yourself, and since you can’t, you will die.”

물론, 마귀가 그 아기에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너는 지금 너를 사랑하고 돌볼 어떤 사람도 없이 온통 외롭다. 네게는 잘못된 것이 있고 결과적으로 아무도 너를 원치 않고 누구도 너를 돌보지 않을 거야. 너는 자립해야하고 너는 그럴 수 없으니까 죽을 거야.”

 

 

God, on the other hand, intends to use the parents to send exactly the opposite message. His message is: “Welcome! You are supposed to be here. You are a gift from God to us. We’ve been waiting to see you face-to-face, and you are even more wonderful and beautiful than we had imagined. You are exactly who we wanted. You are just perfect! We are here to meet your every need. There’s no need to fear or worry about anything. You can just kick back and relax. Now is the only time in your life when you will have no responsibilities and no burdens or pressures. Others will wait on you hand and foot and meet your every need. One specific agent of God, your mom, will make you and your needs top priority in her schedule. We love and bless you, and we welcome you into our family.”

반면에 하나님은 정확히 반대되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하여 그 부모들을 사용하시려고 하신다. 부모의 메시지는, “환영! 너는 여기에 있게 되어있다. 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얼굴을 대하여 너를 보려고 기다려왔다. 그리고 너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놀랍고 아름답다. 너는 정말 우리가 원한 사람이야. 너는 아주 완벽하군! 우리는 너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여기 있다. 두려워하고 무언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는 그저 쉬고 (kick back) 긴장을 풀어라. 지금은 너의 생애에 책임감들과 짐들이나 압박들을 가지지 않을 유일한 때이다. 다른 사람들이 너의 수족이 되어 시중들 것이고 너의 모든 필요를 충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대리인인 너의 엄마는 너와 너의 필요들을 그의 일정에서 최우선으로 삼을 것이다 (your mom will make you and your needs top priority in her schedule). 우리는 너를 사랑하고 축복한다. 그리고 우리는 너를 우리 가정 안으로 환영한다.”

 

Blessing and Cursing at the Time of Birth

출생 시에 축복하기와 저주하기

 

It was the Father’s intent for each child to receive his parents’ blessing right at the time of birth. I believe God intended for there to be one clear message from the heart of the Father through the parents to the heart of the child. However, if the parents feel disappointment, fear, stress, or trauma, the message they send may be something other than the one from the heart of God. So what might blessing and cursing look like at the time of birth?

각각의 아이가 출생 시 바로 그때에 그의 부모들의 축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이다. 내가 믿기는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아이의 마음으로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기를 의도하셨다. 아무튼 만일 부모들이 낙심, 공포, 스트레스, 혹은 마음의 상처 (trauma)를 느낀다면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오는 메시지와 다른 어떤 것일 것이다. 그러면 출생시에 축복과 저주는 무엇으로 보일까?

 

Blessing at the time of birth may involve:

출생 시에 축복이란 다음 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1. Ensuring the child receives verbal and physical communication from the parents that he is wanted, accepted, and

welcome, and the mother providing love and physical nurture.

2. The parents receiving the child as the sex God created him to be.

3. The parents imparting a name with spiritual meaning and having a time of spiritual impartation to the child soon after     birth.

4. A reasonably trauma-free birth.

(1. 아이가 부모로부터 말로 혹은 몸으로 하는 언어소통을 확실히 받게 하는 것. 그 언어소통이란 아이에게 그는 부모가 원

하는 바이고 용 납되고 환영받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육 체적 보호를 주는 엄마를 확실히 받아

들이게 함.

2. 하나님이 아이를 그런 성으로 창조하신 그대로 받아들이는 부모들

3. 부모들이 영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을 지어주기와 출생 후 곧바로 아이에게 영적인 전달의 시간을 갖기.

4. 합리적으로 트라우마 없는 출생.)

 

Cursing at the time of birth may include:

출생 시에 저주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1. The parents communicating to the child verbally and physically that he is not wanted and not welcome. The baby is not

loved, held, cuddled, or physically nurtured by his mother.

2. The parents expressing disappointment in the child’s gender and not receiving the child as the sex God created him to

be.

3. The parents giving the child a demeaning or negative name, and having no time of spiritual impartation, or worse yet,

spiritually dedicating the child to Satan, idolatrous gods, or demonic spirits.

4. The child experiencing significant physical trauma at birth.

(1. 부모들이 아이에게 그가 원해진 바가 아니고 환영받지 않는다고 말 과 몸으로 소통하기. 그 아기는 사랑받지 않고 붙잡

 힘을 받지 않고 껴안아지지 않고 그의 어머니에게서 육체적으로 돌봄을 받지 못함.

2. 부모들이 아이의 성에 대해서 낙심을 표명하고 하나님이 그를 그런 성으로 창조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

3. 부모들이 아이에게 품위를 손상시키거나 부정적인 이름을 지어주 는 것과 영적 분여의 시간을 갖지 못함, 더욱 나쁜 것

은 영적으로 아이를 사탄과 우상들 혹은 악령들에게 바침.

4. 아이가 출생 때 의미있는 육체적 트라우마를 경험함.)

 

출생 시에 축복과 저주의 결과들

Consequences of Blessing and Cursing at Birth

 

When a baby is held, accepted, and nurtured at the time of birth, he tends to develop a strong sense of security and emotional peace. God is able to use that child’s parents to impart a consistent message into the child’s heart regarding his identity and destiny. On the other hand, when a baby is rejected, not held, and not nurtured, the child can develop feelings of insecurity and a fear of death right from the beginning.

아기가 출생 때에 안기고 용납될 때 그 아기는 안정감과 정서적 평안의 강한 감각을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아이의 정체성과 사명에 관해서 아이의 마음속으로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그 부모를 사용하실 수 있다. 반면에 아기가 배척되고 안겨지지 않고 돌봄을 받지 않을 때 그 아이는 바로 시작부터 불안정과 죽음의 공포의 감정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

 

Teams from our ministry have prayed for people who have had great difficulty trusting God in difficult circumstances or trusting a spouse or others close to them. When we have asked the Lord to reveal the source of the insecurity and inability to trust, the person has often been led back to a sense of rejection at the time of birth. This has also resulted in a need to control everything that happens in their lives.

우리 사역의 팀들은 어려운 환경들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큰 어려움을 갖거나 혹은 그들에게 가까운 배우자나 타인들을 신뢰하기에 큰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왔다. 우리가 주님께 그 불안정과 신뢰하기에 불가능한 그 원인을 보여주기를 기도했을 때 그 사람들은 자주 출생 때의 배척감으로 인도되었다. 이것은 또한 그들의 생애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제할 필요를 초래했다.

 

A deep-seated lie rooted in fear is established in the heart from birth that says, “No one really loves me and will meet my needs. Therefore I can trust no one and must put a shell around my heart and do my best to meet all my own needs.” This person may then thrive to meet his own needs for the rest of his life.

두려움 안에 뿌리를 둔 깊히 자리잡은 거짓말은 출생 때부터 이같이 말하는 것 안에 세워져있다. “아무도 참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 필요들을 채워주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고 내 마음에 껍질을 씌워야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내 자신의 모든 필요들을 채우기 위해 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이 사람은 그래서 그의 남은 일생동안 그 자신의 필요들을 채우기 위해 몸부리치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A second consequence that may come from rejection at birth is an undue drive to perform in order to obtain acceptance. The lie imparted is: “I obviously have no inherent value. Therefore I must do something outstanding to gain the acceptance and approval of those important to me.” This person may strive all his life to become “somebody” because deep inside he feels like a “nobody.”

출생 시 배척으로부터 올지 모르는 두 번째 결과는 용납을 얻기 위해서 행해야 하는 과도한 돌진이다 (drive). 전달된 거짓말은 나는 분명히 타고난 가치가 없어. 그러므로 나는 내게 중요한 그들의 용납과 인정을 얻기 위해 특출한 무언가를 해야만 해이다. 이 사람은 마음 깊히 그가 아무 존재도 아닌 (nobody) 것같이 느끼기 때문에 대단한 사람” (somebody)이 되기 위하여 평생 몸부림을 쳐야할지 모른다.

 

출생시의 성() 축복 혹은 저주

Gender Blessing or Cursing at Birth

 

I mentioned that one way an infant may be blessed or cursed at birth is through the parents’ acceptance or rejection of his gender. When parents affirm a baby as the boy or girl God created, this again establishes deep inside a self-accept-

ance and settled sense of gender identity. This person goes through life looking in the mirror and takinng pleasure in his gender; he believes God did a good job when He created him. A person blessed at birth is seldom confused about gender roles later in life and rarely deals with same-sex attraction.

나는 유아가 출생 시에 축복을 받든가 저주를 받든가 하는 방법은 그 아이의 성에 대한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대한) 부모의 용납과 배척을 통해서라고 언급했다. 부모들이 아기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아이 혹은 여자아이로 확정할 때 이것은 내면 깊은 데서 성 정체성의 자기 용납과 안정된 감각을 세운다. 이 사람은 그의 성에 대해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즐거움을 취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하셨을 때 잘 하셨다고 믿는다. 출생 시에 축복은 받은 사람은 결코 인생의 후기에 성 역할들에 대해 혼돈하지 않고 동성애 끌림을 (same-sex attraction)드물게 다룬다.

 

On the other hand, a person whose gender identity was rejected at birth may constantly struggle with the feeling that God played a cruel joke when He established his gender. These individuals may even feel they were born the wrong sex. Now, obviously, God doesn’t put anyone in the wrong body, but many people have parents who make them think something is wrong with their gender.

반면에 자기의 성 정체성이 출생 시에 배척을 받은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그의 성을 세우실 때 잔인한 장난을 하셨다는 느낌과 투쟁할는지도 모른다. 이 개인들은 자기들이 잘못된 성으로 태어났다고까지 느낄지 모른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잘못된 몸 안에 두시지 않는다고 지금 분명히 해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에 대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부모들을 갖고 있다.

 

With ultrasound technology people can know a baby’s gender long before birth. Parents who desperately wanted a girl, for instance, may experience disappointment at the fact that they are having a boy, and that disappointment may be expressed to the child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Some parents may go so far as to give the boy a masculine form of the chosen girl’s name, calling their son Ashton, for instance, instead of Ashley.

초음파 기술과 더불어 사람들은 아기의 성을 출생 오래전에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여자아이를 간절히 원한 부모들은 남아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을 경험할 것이고 그 실망이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표현될 수 있다. 어떤 부모들은 남자아이에게 선택된 여자아이의 이름의 남성적인 형태의 이름을 주는 정도까지 갈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의 아들을 애슐리 (Ashley 여자 이름) 대신 애쉬톤 (Ashton 애슐리의 남성화된 이름)이라고 부른다.

 

When this kind of thing happens, right at birth the child receives an impartation to his heart that says, “You’re not what we want. You’re not what we expected. Something is wrong with you!” This little boy may come to believe, “I can’t ever meet the expectations of my parents, because I’m the wrong sex. It’s not possible for me to be who I’m supposed to be.” This is a lie, but the child gets confused by the competing messages he hears  the one God is speaking to him versus the one Satan is sending through his parents.

이런 종류의 일이 일어날 때 출생 바로 그때에 그 아이는 그의 마음에 이같이 말하는 전달을 받는다. “너는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야. 너는 우리가 기대한 바가 아니야. 너에게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어!” 이 작은 남자아이는 이같이 믿게 된다. “나는 내 부모들의 기대들을 맞추어 줄 수가 전혀 없어. 왜냐하면 나는 잘못된 성을 타고 났으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아.” 이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가 듣는 경쟁적인 메시지들에 의해서 혼란을 겪는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 대() 사탄이 그의 부모를 통해서 보내고 있는 메시지들에 의해서 그렇다.

 

As I have ministered to people through the years, I have found that little girls tend to respond in one or two ways to their parents rejecting their gender at birth. Some work to become the boy her father wanted. As she grows, she becomes a tomboy and takes an interest in the things she thinks will please her dad. This is not the reason all girls enjoy male-oriented activities, but I have found that this is most often the case.

내가 수 년간 사람들에게 사역해왔을 때 나는 작은 여자아이들이 출생시 그들의 성을 배척하는 그들의 부모들에게 한 두 가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아이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원하는 소년이 되려고 일한다. 그 여자아이가 자랄 때 그녀는 말광량이가 되고 자기 아빠를 즐겁게 할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흥미를 갖는다. 이것은 모든 소녀들이 남자지향적인 활동들을 하는 이유가 아니지만 나는 이것이 가장 흔한 경우라는 것을 발견했다.

 

The interesting thing is that often this behavior does please the father. Dad loves taking her fishing, to baseball games, and doing the other activities he dreamed of enjoying with a son. Consequently in her heart this little girl takes on an identity of being “just one of the guys,” and she receives significant affirmation and blessing from her father in the early years of life.

흥미로운 것은 이 행동이 자주 아버지를 즐겁게한다는 것이다. 아빠는 그녀를 낚시에, 야구 게임에 데려가기를 좋아한다. 또 그 아빠가 아들과 함께 즐기기를 꿈꾸는 다른 행동들을 하기를 좋아한다. 결과적으로 그 여자아이의 마음에서 이 작은 여자아이는 그저 남자 녀석들 중 하나인 정체성을 갖고 그의 생애의 초기 몇 년들에 그녀의 아비로부터 의미있는 확인과 축복을 받아들인다.

 

Yet when she reaches puberty, it becomes clear that she is not one of the guys. In his attempt to affirm her as a young woman, Dad no longer wrestles with her or conveys the same kind of physical affection he once did. This withdrawal can easily be perceived as more rejection, and the daughter can begin to believe the devil’s lie that her gender is “wrong.”

그럼에도 그녀가 사춘기에 이를 때 그녀는 남자녀석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게 된다. 그 여자아이를 젊은 여성으로서 확언하기를 그 아빠가 시도함에 있어서 아빠는 더 이상 그녀와 씨름하지 않거나 혹은 그가 과거 언젠가 했던 동일한 종류의 육체적 애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이런 후퇴는 쉽게 더 많은 배척으로 인지될 수 있고 그 딸은 그녀의 성이 잘못된것이라는 마귀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할 수 있다.

 

One woman I met had always despised being a woman, and consequently as an adult she dressed in clothing designed to hide her femininity. She was actually a very beautiful woman, but she didn’t want anyone to know that. As we prayed, the Lord revealed that this tendency was a result of her father rejecting her gender at birth. I am convinced that God never intended for any woman to feel this way about herself. God wants every woman to love being a woman, to know God did a great job when He made her. Yet I encounter many women who have embraced the enemy’s lie and feel deep down that they were cheated because they weren’t created male.

내가 만난 한 여인이 항상 여성됨을 경시해왔고 결과적으로 한 성인으로서 그녀는 그녀의 여성됨 (femininity)을 숨기려고 계획한 옷을 입었다. 그녀는 실제적으로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나 누구도 그것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기도했을 때 주님이 이 경향은 그 아버지가 그녀의 출생 시의 성을 배척한 결과라고 보여주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결코 어떤 여인이 자신에 대해 이런 식으로 느끼게 의도하지 않으셨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여성이 여성됨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만드실 때 위대한 일을 하셨다고 알기를 원하신다. 그런데도 나는 많은 여성들이 원수의 거짓말을 끌어안고 깊은 내면에서 그들이 남자로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속은 것이라고 느끼는 여성들을 만났다.

 

The second thing that can happen to girls who are not blessed at birth is that they can develop a compulsion to achieve. Since the enemy used her parents to impart his lie, she begins to feel that she has not inherent worth, so she must strive to do something great to gain acceptance and approval. She thinks she must have a successful career, make a lot of money, excel at sports  anything to feel valuable.

출생 때 축복을 받지 않았다는 소녀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두 번째 것은  그들이 강박충동을 발전시키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수 마귀가 그의 거짓말을 전달하기 위하여 그녀의 부모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가 타고난 가치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녀는 용납과 인정을 얻기 위해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하려고 몸부림쳐야만 한다. 그녀는 성공적인 이력을 가져야 하고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스포츠에 탁월해야 한다. 가치있다고 느끼기 위한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한다고.

 

This leads to a lifelong battle with performance orientation and deep frustration. Because the lie inside keeps the soul continually out of peace, she can never accomplish enough to dispel the deep feeling of inner worthlessness. Fortunately we have seen many women whose femininity was cursed at birth totally set free when we led them through a process that allowed the Lord to remove the deep-rooted identity lie and replace it with His truth. (See John 8:32.)

The same things that happen to girls can occur in boys. The boy rejected at birth by his parents may strive to earn value by becoming wealthy, powerful, famous, or all three. Or he may attempt to become the little girl his parents wanted. I have often seen a father’s gender rejection at birth become the seedbed of homosexuality in a son’s heart. Knowing his father is disappointed with his gender, boys as young as three, four, or five years old will show interest in dolls, fashion, and other more feminine activities.

이것은 실적 지향성과 (performance orientation) 깊은 욕구불만과의 평생 투쟁으로 이끈다. 내부에 있는 그 거짓말이 그의 영혼에서 평강을 끊임없이 빼앗기 때문에 그녀는 내부의 무가치함이란 깊은 감정을 충분히 축출할 만큼 성취할 수가 없다. 다행하게도 우리는 자기의 여성성이 출생 때에 저주받은 많은 여성들이 주님께서 깊이 뿌리내린 정체성의 거짓말을 제거하시게 허락하고 그분의 진리로 그것을 대신하게 허락하는 과정을 거쳐 그들을 인도했을 때 전부 자유해졌다. (8:32 을 보시라).

소녀들에게 일어나는 동일한 것들이 소년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다. 출생시 부모에 의하여 거부된 소년은 부요하게 되고 힘있게 되고 유명해지고 혹은 이 세 가지 다 갖게 되어서 가치를 얻으려고 있는 힘을 다 할지 모른다. 혹은 그는 그의 부모들이 원한 작은 소녀가 되기 위한 시도를 할 수도 있다. 나는 자주 보았는데 한 아버지가 자기 자식의 출생 시에 가진 성 배척이 아들의 마음 안에서 동성애의 모판이 되는 것을. 자기의 성에 자기 아버지가 실망했다고 알 때 세 살, 네 살, 다섯 살 먹은 소년들이 인형들, 패션, 다른 더 여성적인 행위들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The son wants to please his dad, but this behavior probably won’t do the trick. Dad will likely reject the little boy and possibly even make cruel comments or convey his displeasure nonverbally. This may be confusing for the son, since he was only trying to be the little girl his father seemed to want. The enemy may then deepen the lie by saying it’s not only his gender that displeases his father but his entire being, that there is just something inherently inadequate and displeasing with him as a person.

아들은 그 아비를 기쁘게 하기를 원하지만 이 행동은 아마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아빠는 작은 소년을 배척할 듯하고 잔인한 언사를 하고 말로는 아니지만 그의 불쾌감을 전달할 수도 있다. 이것은 아들에게 혼돈스러울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는 자기 아빠가 원하는 듯한 작은 소녀가 되려고 오로지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수 마귀는 그때 그아비를 불쾌하게 하는 것은 성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전체가 그렇다고 말함으로써 그 거짓말을 심화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한 인간으로서 그를 선천적으로 부적합하고 불쾌한 어떤 것에 불과하다고 말함으로써 그럴 것이다.

 

If this scenario unfolds this way and the father further rejects the son, the mom will probably try to comfort and shelter her son. She’ll gather her little boy in her arms and say, “Honey, I love you. Your dad does too; he just doesn’t know how to show it. There’s nothing wrong with you. You’re special. You’re precious. I love you.

만일 이 시나리오가 이 방식을 공개한다면 그 아버지는 더 그 아들을 배척하고 그 엄마는 아마도 그녀의 아들을 위로하고 안정시키려고 애쓸 것이다. 그녀는 자기의 작은 아들을 그녀의 품 안에 안고 말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해. 네 아빠도 그렇지. 그는 그저 그것을 보이는 방법을 모를 뿐이야. 너에게는 잘못된 것이 없어.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너는 고귀해.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Now, which one of these two people do you think this little boy will want to open up to and be around? Harsh, ridiculing Dad or kind, compassionate Mom? Probably Mom. Over time this little boy will spend more time around women and become more effeminate. Dad will only have a harder time relating to him. But Dad has another opportunity right at puberty to affirm. his son’s masculinity and release him into his adult identity as a man. (We will discuss this more fully in a later chapter.) However, if Dad doesn’t know how to bless his son at puberty and instead imparts further rejection, then there’s a strong possibility that this son will be drawn into a homosexual lifestyle in his early teenage years.

, 당신 생각에 이 두 사람 중에 어느 사람에게 이 작은 소년이 마음을 열고 그 주변에 있으려고 생각할까? 선택하기 가혹하겠지만, 조롱하는 아빠, 아니면 친절하고 동정적인 엄마? 아마도 엄마일 것이다. 여러 번 이 작은 소년은 여성들의 주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고 더욱 더 여성적이 될 것이다. 아빠는 그 아들과 관련하여 더 힘든 시간을 가질 뿐일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바로 사춘기에 그 아들의 남성됨을 확정할 다른 기회를 가진다. 그리고 그를 한 남자로서 그의 성인 정체성으로 그를 놓아줄 기회를. (우리는 이것을 나중의 장에서 충분히 토론하겠다). 어쨌든 만일 아빠가 사춘기에 그의 아들을 축복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대신 더 심한 배척을 주면 이 아들이 그의 사춘기의 초기에 동성애적 삶의 스타일로 끌려갈 강한 가능성이 있다.

 

Having been denied all his life gender affirmation and his father’s blessing, the young man, now in his teenage years, will search for this approval elsewhere. Sadly this affirmation will likely come from a man who is himself bound in a homosexual lifestyle. He will tell the son what the boy longed to hear from his father: “(I love you. I value you> I’m proud of you. You are special. You’re wonderful. You’re handsome. You‘re a great man. You’re a wonderful person.” This may not begin as the only way young men enter a gay lifestyle, but I have seen this scenario many times in ministry.

그의 모든 성 긍정과 (gender affirmation) 그의 아버지의 축복을 부인당했기 때문에 이 젊은이는 자금 그의 틴 에이져 시기에 다른 데서 이 인정을 찾을 것이다. 슬프게도 이 긍정은 자신이 동성애적인 삶의 스타일에 묶인 한 사람으로부터 나와야 할 듯하다. 그는 그 아들에게 소년이 그의 아비로부터 듣기를 갈망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소중하게 여겨. 나는 너를 자랑스러워 해.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너는 놀라운 사람이야. 너는 잘 생겼어. 너는 위대한 사람이야. 너는 놀라운 사람이야.” 이것은 성관계로서 시작하지 않을 수 있으나 그것은 자주 한 가지로 귀속한다. 이것은 청년이 게이의 삶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나는 사역에서 아주 여러 번 이 시나리오를 보았다.

 

How does this young man’s father respond? He will probably heap on more ridicule and rejection. The irony is that the father held the key to influence his son’s identity and destiny all along, but instead of affirming the gender God gave his child, the father planted a seed of gender rejection and homosexuality in his son at birth. He then watered that seed and continued to fertilize it by not blessing his son throughout his childhood.

이 청년의 아버지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는 아마도 더 많은 조롱과 배척을 쌓을지 모른다. 아이로니하게도 그 아버지는 그의 아들의 정체성과 사명에 줄곧 영향을 끼칠 열쇠를 잡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아이에게 주신 성을 긍정하는 대신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의 출생 시에 성 배척과 동성애의 씨앗을 심었다. 그는 그때 그 씨앗에 물을 주고 그 아이의 어린 시절 내내 그의 아들을 축복하지 않음으로써 거기에 비료를 계속 주었다.

 

Fortunately it is possible for the Lord Jesus to remove this deep identity lie from the hearts of sons and replace it with the truth that should have been imparted through a human father. Many times our ministry teams have seen the Lord resolve this situation in families who have participated in a Blessing Generations Experience.

다행하게도 주 예수님이 이 깊은 정체성 거짓말을 아들들의 마음들에서 제거하시고 그것을 인간 아버지를 통해서 전달되어져야만 했던 진리로 대체하셨다. 여러 번 우리 사역팀은 주님이 세대축복 경험 (Blessing Generations Experience) 모임에 참가한 가정들 안에서 이 상황을 해결하시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