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對 권위 (Control vs. Authority)
매 주 부모가 가정에서 축복의 분위기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하여 부모는 자기 자녀들의 정체성 (신분, 자아상)을 그들의 행위와 구분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특히나 자녀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생길 때 이것이 중요하다.
(to separate their children’s identity from their behavior).
나는 (Craig Hill) 주님이 내게 처음 보여주신 그 때를 기억하는데 나는 내 아들을 훈련시킬 필요를 느꼈을 때 축복하기보다는 막 저주하려는 것을 보여주셨다. 내 막내아들 죠나단이 네 살이었고 나는 막 목사의 사역을 시작한 해였다. 은혜로운 예배를 훌륭하게 마치고 현관 입구로 걸어갔는데 내 아들의 주일학교 교사가 죠나단과 함께 거기 서 있었다.
그 교사가 인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오늘 아침 주일학교 반에서 요나단과 관련하여 작은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죠나단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청했는데 이 애가 ‘안 할래요’ 라고 말해서 다시 요청했는데 또 ‘안 할래요’ 라고 말하고 제게 아주 터무니없는(외설스런 obscene) 이름을 붙였어요. 우리 반에서 이 문제를 처리했지만 목사이신 아버지가 그것을 알려고 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 얼굴이 세 번 붉어짐을 느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죠나단이 내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 교사는 내 아들의 상소리를 듣고 우리 식구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며 산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나는 즉시 딤전 3:5을 생각했는데 교회의 목회자들과 장로들에게 요구되는 것에 관한 말씀이다. “만일 사람이 자기 가정을 이끄는 방법을 모른다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겠는가?” “If a man does not know how to manage his own household, how will he take care of the church of God?” 나는 ‘내 목회가 끝났다. 내 아들은 통제 불능이고 나는 사직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수치감은 곧바로 분노로 바뀌었다. “바로 여기서, 바로 지금, 죠나단의 엉덩이를 때려주고 이 교사에게 나는 좋은 아버지이고 내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겠다.”
그러나 내가 죠나단을 향해 갈 때 성령님께서 나를 멈추게 하시고 내게 물으셨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 아들을 훈련하려고 합니다.” “아니야, 너는 아들을 훈련하는 게 아니라 사탄의 대리자가 되어 죠나단의 신분(인격 identity)을 저주하려고 하고 있어.” “무엇이라고요? 아닙니다. 그 애는 나쁜 짓을 했고 훈련 받을 필요가 있어요. 저는 그의 아비로서 지명받았고 그 훈련을 하게 대리자로 기름부음을 받았어요.”
주님이 그 때 내게 말씀하셨다. “맞아. 그러나 이 특별한 순간 너는 그럴 자격이 되어있지 않아.” “자격이 없다고요? 왜요?” 나는 따졌다.
그때 주님이 내게 마 7:3을 생각나게 하셨다. 요약하면 “네가 너의 형제의 눈에서 티끌을 빼내기 전에 네 눈에서 기둥을 빼내거라. 네가 네 눈 안에 이런 커다란 기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는 분명하게 볼 수 없어서 네 아들의 눈에서 티끌을 빼낼 수 없단다. 너는 네 아들의 유익을 위해서 훈련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네 마음은 분노로 차서 그 교사 앞에서 너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또 너를 당황시킨 것 때문에 네 아들에게 분노를 발산하기 위하여, 네 아들을 훈련하기를 바라는 거야.”
주님은 계속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비로서 실패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네 작은 아들에게 너의 모든 좌절을 발산하려고 하고 너의 분노를 통해서 네가 느끼는 것보다 더 나쁘게 네 아들이 느끼게 하려는 거야. 너는 네 아들에게 마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사탄의 반 복음적인 (anti-gospel) 메시지는 사람의 가치를 실적(성과)과 연관지으려고 하나 내 복음은 그와 달리 사람의 가치를 실적과 연관시키지 않는단다. 사탄의 반(反)복음은 이렇게 말하지. ‘만일 네가 순종하고 옳게 행하면 나는 너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겨주고 축복한다. 그러나 네가 불순종하고 그릇 행하면 나는 사랑을 주지 않고 너희 가치를 빼앗고 너를 저주한단다.’ 너는 네 아들의 인격을 저주하려고 했다. 그가 불순한 말을 했고 너를 당황하게 했으니까. 내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네가 순종하고 옳게 행하면 나는 너를 사랑하고, 가치를 인정하고 축복하겠다. 아무튼 만일 네가 불순종하고 그릇 행한다면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복을 내리겠다. 그러나 나는 또한 너의 잘못된 선택에 합당한 결과로써 너의 행위를 훈련하겠다. 그럼에도 너를 위한 내 사랑과 소중히 여김은 네가 무엇을 하든 결코 변하지 않는단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바 네가 네 아들에게 전하기를 바라는 나의 메시지란다.”
이것은 내게 깜짝 놀랄 계시였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주님께 내가 여쭈었다. “제가 왜 아들에게 그렇게도 당황하고 분노했지요?”
나는 주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즉각 들었다. “아들아,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또 내 눈에 네가 소중함은 너의 성과(실적)에 의존치 않는다는 것을 여전히 믿지 않기 때문이야. 너는 소중히 여겨지기 위하여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만 했고 지금 너는 그런 거짓말(진리가 아닌 것)을 네 아들에게까지 뻗쳤던 거야. 네 아들이 범죄하고 잘못을 한다면 너는 네가 무가치한 아비처럼 느낄 것이고 너를 불명예스럽게 한 것 때문에 꾸짖으려는 거야. 그러니까 사실 너의 정서적인 안녕은 네 살배기 아들의 행위에 지금 의존하고 있는 거야. 타인의 정서적인 안녕을 위한 책임감은 어른에게 올려놓는 제법 무거운 짐이 되곤 한단다. 그러나 너의 정서적인 안정감을 위해서 네 살배기 아이가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은 그 아이에게 전적으로 공평하지 않단다. 만일 그가 바르게 행동한다면 너는 그를 소중하게 느끼고 정서적으로 만족하겠지. 그러나 만일 그가 잘못 행동한다면 너는 그가 무가치하고 너는 화가 난다고 느낄 것이고 그런 감정들 때문에 네 아들을 나무라고 그의 인격을 저주하고 네가 느끼는 것보다 너 나쁘게 그 아이가 느끼게 만들겠지.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네 아들에게 사탄의 반복음을 퍼뜨리는 대리자가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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